견내량해전의 패장…영등왜성에서 '복수의 칼'을 갈다
견내량해전의 패장…영등왜성에서 '복수의 칼'을 갈다
  • 최대윤 기자
  • 승인 2021.0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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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거제지역에 가장 먼저 쌓은 '영등왜성'
임진왜란·정유재란 해전 격전지…거제지역에 일본왜성 4곳 존재
현재 훼손 심각한 '영등왜성'…역사 산교육장·관광자원 활용 해야
영등왜성은 왜군이 견내량해전 후 부산 주둔지를 지키기 위해 제일 먼저 쌓은 왜성중 하나다. 사진 영등왜성의 서쪽 성곽 모습.
영등왜성은 왜군이 견내량해전 후 부산 주둔지를 지키기 위해 제일 먼저 쌓은 왜성중 하나다. 사진 영등왜성의 서쪽 성곽 모습.

1592년 4월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16만여 병력으로 조선을 침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왜군은 7년 동안 조선을 유린하며 동해와 남해안 수십 곳에 왜성을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왜성은 경남 17곳·부산 11곳·울산 2곳·전남 1곳 등 31곳에 달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 대부분의 해상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였던 거제지역에도 4곳의 왜성이 남아 있다.

그중 경남 거제시 장목면 영등왜성은 견내량해전(한산대첩) 이후 일본이 가장 먼저 구축한 왜성중 하나로 일본군 장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축성하고 수비한 성으로 알려져 있다.

장목면 구영리의 대봉산 정상(해발 257m)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간 해발 234m 일대에 위치한 영등왜성은 거제지역 왜성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왜성이다.

'경남의 성지' 자료집에 기록돼 있는 거제 왜성. 빨간색 동그라미가 장목 영등왜성이다.
'경남의 성지' 자료집에 기록돼 있는 거제 왜성. 빨간색 동그라미가 장목 영등왜성이다.

영등왜성은 누가 만들었나?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 당시 왜군의 지휘관이기도 했던 시마즈 요시히로는 정유재란(1597년) 때 1000여척의 일본 전선으로 연합 함대를 만들고 칠천량해전에서 원균(元均)이 지휘하던 조선 수군을 수몰시키기도 했다.

특히 시마즈 요시히로는 전북 남원성을 점령하고 조선의 도공 80명을 일본에 강제 연행했던 것으로 악명을 떨친 적장이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1598년 사천 선진리성에서 7000명의 병력으로 조(朝)나라와 명(明)나라 연합군 4만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이후 12월에 순천왜성에 고립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구출하기 위해 500척의 함대를 이끌고 출전했다가 노량해전에서 조선수군에 대패해 50여척만 이끌고  일본으로 도망갔다.

시마즈 요시히로가 견내량해전 이후 쌓은 영등왜성은 거제의 장문포왜성 및 송진포왜성·북쪽의 웅천왜성·안골포왜성·명동왜성과 연결되는 지점에 위치한 전략 요충지다.

영등왜성 천수각 외곽 성벽 일부.
영등왜성 천수각 외곽 성벽 일부.

일본군 최고의 요충지 영등왜성

옛 영등지역이 임진왜란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조선 조정이 부산·거제·진해에 성을 쌓고 주둔한 왜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이에 비변사는 왜군들을 격퇴하기 위한 의견을 낼 때마다 옛 영등의 왜군을 쳐야 한다는 기사가 종종 등장할 정도다.

견내량이 조선수군의 왜군으로부터 내해(內海)를 지키기 위한 요충지라면 장목만 일대와 옛 영등은 일본군이 조선수군으로부터 거점기지인 부산을 지키기 위한 최대 요충지인 셈이다. 멀리 낙동강 하구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영등왜성은 산등성이 모양 그대로 경사면에 만들어졌다.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영등왜성은 훼손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태다.

영등왜성 성곽은 서쪽편의 천수대가 위치한 주곽을 중심으로 서쪽과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상에 계단상으로 복잡한 내성구조로 만들어졌다. 본성과 외(外)성을 따로 두고 있다고 알려진 영등왜성은 본성을 지키기 위한 외성으로 옛 영등진성을 활용했다.

임진왜란 초기부터 비어 있었던 옛 영등진성을 함락한 왜군이 자신들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일부 개조해 사용했기 때문에 옛 영등진성의 잔존 성곽을 왜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현재 옛 영등진성의 훼손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남아 있는 구조나 성돌의 크기 등이 조선시대 초기에 쌓은 성곽의 구조를 잘 반영하고 있어 옛 영등진성은 왜성이 아닌 조선의 성으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영등왜성 천수각 내 계단시설.
영등왜성 천수각 내 계단시설.

외세 침략 흔적…평화·역사의 산 교육장

영등왜성을 찾으려면 장목면 농소 글램핑야영장 방향에서 임도를 타고 송신탑까지 올라가면 찾기 쉽다. 제2 송신탑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가면 곧바로 내성과 만나게 된다.

영등왜성은 송신탑을 설치하기 위해 임도를 건설하는 과정에 일부가 훼손된 상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이 제작한 견취도를 비교해 성 둘레의 모양이나 구조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는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남긴 왜성은 이후 조선의 성곽 유적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기존 우리나라의 성벽은 직각에서 후대로 갈수록 비스듬하게 쌓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임진왜란 이후 왜성의 구조를 참고한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왜성은 1차 방어를 위해 외성을 쌓고 내성은 복잡한 구조로 적의 침입 시 시간을 끌 수 있거나 기습 또는 잠복을 할 수 있게 만든 특징을 보이고 있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옥산성과 중금산성의 입구가 'ㄱ'자로 만들어진 것도 왜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남긴 영등왜성 견취도.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남긴 영등왜성 견취도.

우리나라의 성곽 유적은 대부분 주변 지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에 만들어져 경치가 뛰어난 특징이 있다. 왜군이 만들어 놓은 왜성 역시 강이나 바다 근처 낮은 구릉에 자리잡고 있어 경치가 좋다. 때문에 남아 있는 왜성을 정비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거나 산책로·공원으로 만들면 지역 관광자원으로 충분히 활용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더구나 최근에는 임진왜란을 단순히 일본의 조선 침략전쟁으로 보기보다는 한·일·중 동북아 3국이 벌인 국제전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 일본·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명분도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영등왜성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왜성은 문화재청이나 각 지자체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치욕적인 역사의 산물이라는 부정적 인식 때문으로 보이는데 울산의 서생포왜성의 경우 사적으로 지정됐다가 이런 이유로 해제되기도 했다.

영등왜성은 거제지역 왜성중에서도 시민이나 지자체의 관심이 가장 없는 곳으로 잡목제거 조차 진행되지 않아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왜성을 정비해 역사의 산 교육장이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왜성의 보전은 역사자료 및 임진왜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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