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지방선거는 막을 내렸다.

그동안 선거에 이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도 있었고, 교묘한 네거티브도 있었다.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찔렀고 잘한 일도 전시행정이라며 몰아붙이기도 했다. 선거가 가장 신사적이고 가장 아름다울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다만 세월호에 밀려 다른 때보다 차분했고 조용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선거의 끝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 놓는다. 이겼다고 느껴지는 순간 개표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인데도 샴페인을 퍼뜨리고 축하인사를 받고 당선소감을 발표한다. 선진국의 선거문화는 그렇지 않다. 모두가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패자가 먼저 상대방에게 축하전화를 하고 패배를 시인하고 나서야 이긴 자는 승리를 선포한다. 이 전화를 '패배 시인 전화(phone to concede defeat)'라고 한다.

패자는 패배의 아픔을 견뎌내면서 통합과 단결을 말하고 당선자의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는 축하의 메시지를 전한다. 선거운동 당시 헐뜯던 양상과는 정반대다. 설령 이것이 정치적 수식어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패자는 이 과정에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다시 한 번 검증받게 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선거 뒤끝은 어떤가? 선거가 끝나면 축하전화'를 걸어 주기는커녕 서로 원수가 되기 일쑤다. 진정한 승복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탓에 항상 결과의 후유증만 심각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 유권자는 이긴 자를 주시하기 보다는 진자의 모습을 유의 깊게 살펴보자.

"미국 선거에 패자란 없습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우리는 모두 미국인일 뿐입니다. 이제는 국가를 위해 공동의 목적을 찾도록, 후회나 분노 증오를 갖지 말고 협력하며 동참해야 합니다."

2004년 미국대선 때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졌을 때 한 이 패배연설은 아직도 명문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국 정치문화에 바꿔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패자의 용기다. 그가 만일 다음을 기약한다면 아름다운 패자의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먼저 전화를 하고, 축하 방문을 하고, 당선축하연이나 취임식에도 참석해야 한다.

이런 아름다운 패자에게 다음 기회를 주는 유권자의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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