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어느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질, 언필칭 경상도 기질이니, 전라도 기질이니 하는 지역적 기질이나 특정 지역인들 만이 갖는 기개와 정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산물이 아니다. 그 기질과 역량의 바탕에는 환경적인 요인과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있고, 어떤 기질이 되고자 하는 현시적 욕구가 슬로건처럼 등장한다.

얼마 전 부산이 시민정신을 고양하는 슬로건을 '열정'과 '의리'로 집약하고 그 상징성을 중심으로 미래개척의 시민적 에너지를 고양시키고자 천명했다. 과연 부산 사람들이 그렇게 열정적이고 의리가 충만한가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겠지만 오래 전에 시로 승격하면서 시민헌장을 제정하고 역사적 우월성을 들추어 기개로 삼으려는 노력과 기지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이고 자연환경의 지배를 받는 처지여서 환경적 특성에 따른 기질을 갖고 태어나거나 성장하면서 체득하게 마련이다. 대륙적인 기질이 있고 반도나 섬사람의 기질이 분명 존재한다.

지형이나 기후가 아늑하고 온화하여 생활이 풍족하면 평화롭고 어진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룬다. 다소 삭막하고 각박한 환경에서 갑자기 개발 바람이라도 불고 외지인들이 들이닥치면 인심이 흉흉해지고 농간꾼들이 판을 치는 살벌함이 설친다.

그 옛날 해적질만을 일삼던 바이킹의 후예들이 영국의 선각자들을 찾아 가 부국의 길을 물었을 때 수 십,수 백 년이 걸리더라도 주거지 주변에 숲을 가꾸라는 조언을 했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충고를 따랐던 바이킹의 후예들은 죄수가 없이 텅 빈 교도소를 상징하는 백기가 걸린 마을과 도시를 자랑하면서 풍요를 구가할 수 있게 되었다. 공동체의 정신, 시민사회의 기질과 에너지는 현시욕과 목표를 가진 건전한 정치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반도의 어느 지역 어디를 가도 수천 년 역사의 질곡에서 수난과 이합집산을 거듭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엇갈리면서 무엇 하나 보존키 어려웠던 역사를 두고 대체 무엇을 고유의 기질이라 하고 지킬 것인지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동래를 중심으로 정발과 송상현 공 같은 기개 높은 지도자들이 지역을 사수했고, 지리적 환경의 혜택으로 개항의 기지로 바뀐 부산이 근대화의 수출기지로 역동하면서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시민문화를 가꿨다고 자랑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역동적이지 않고 의리를 잃고 산다고 해도 그런 시민이 될 수 있다는 현시성이 공동의 메너리즘을 일깨울 수가 있는 것이다.

세상 어느 지형보다도 동서남북으로 갈라지고 골이 패인 섬 지방에서 유배와 수난이 잦았던 우리들의 경우는 어떨 것인가. 그 역사적 질곡 때문에 배타성이 강하고 가로막힌 고갯길로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척박하게 등진 환경을 이겨내는 올바른 시민정신의 고양정신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적어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늘 이런 문제들을 자문해야 한다.

이해관계만을 앞 서 세우고 난개발의 시대를 일구어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과도적 숙명이었지만 육로의 길이 트이고 어족자원에만 급급하던 세월을 뛰어 넘은 도시화의 시대에서 아직도 내 동네, 네 동네를 가르고 배타하며 경계의 눈길을 감추지 않는 인심으로는 자주적인 자치단체의 시민정신을 고양하기 어렵다. 함께 바라보는 삶의 지향성이 인간복지의 합의로 가야하고, 상생과 화목의 바탕위에 남해안시대의 관문다운 역동성과 강인함이 살아 숨 쉬는 미래의 도시로 가야 한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도, 주어지는 것도 아닌 공동체적 현시성의 발로이다.

지역정치가 이것을 들추어야 하고, 막힌 물꼬를 틔워서 길을 열어야 한다.

주어진 예산이나 얻어 쓰는 지원금에 행정을 맡기고 구태의연한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지역정치에서 창의와 역동성을 갖기란 어불성설이다.

지역의 난제들을 균형있게 고루 찾아 해결하고 발전시키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모리배 같은 선거의 이해에 따라 사업을 쫒아가는 폐단은 이제 종식해야 한다. 지역의 언론들도 무슨 수사기관의 홍보실처럼 사건을 들추고 알리는 매체가 아니라 지역환경과 정치폐단을 바로잡고 시민정신을 고양하는 촉매제로서의 역할에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들이 긋는 삶의 노선들이 바로 우리들의 자식과 후대가 따라오고 바라 볼 길이라는 걸 자각한다면 그동안 삶의 피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숙제들을 한번쯤 챙겨 우리가 사는 둘레의 모양새를 가다듬는 노력도 해봄직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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