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지역행정구도의 근본적인 개혁 요구가 등장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이미 20세기가 시작되기도 전인 식민지 시대의 통치수단으로 정해 놓은 행정구역과 제도가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연연한다는 것은 수치에 가까운 구태였다.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여기에 관한 개혁을 역설했지만 엉뚱한 개발 사업에 국력을 소진하면서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그 사이 일부 지역에서 일어 난 행정구역의 통폐합이 변화를 가져 왔지만 대체 행정구역통폐합을 하는 이유를 제대로 모르는 해당 주민들이 갈등만을 부추기는 결과만을 야기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통합 창원시의 예가 대표적인 사례다. 겨우 용접을 한 표면에 지금도 세 조각을 서로 가르고 조이느라 용접봉과 망치를 번갈아 들이대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지역이기주의가 지금처럼 만연한 현실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업이나 혐오시설의 유치, 행정구역의 조정 같은 일은 좀체 실현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가운데 실현가능성이 점쳐졌던 전북의 전주·완주의 통합이 결렬되었다.

대조적으로 보는 이들은 도농간(都農間)의 이해관계가 달랐다고 진단한다. 가뜩이나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거 유권자의 세력을 의식해서 도심 중심의 행정편의와 민원에 정성을 들이는 관행으로는 통합으로 인한 혜택에 열세를 면치 못할 거라는 완주 지역민들의 반대의사가 과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대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고, 그 결과에 대한 부담이나 과정의 비용소모나 갈등조장은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치유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그럴듯하게 대답하고 비평하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찮은 뉴스거리에도 채널마다 정치비평가들이 날밤을 새워가며 떠들어대는 형편인데 지역행정에 관한한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무심함이 도를 넘고 있다.

어쩌다 뉴스에 등장하는 풍경은 지역의회의 여야끼리 벌이는 난투극을 중계하는 수준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행정구역의 효율적인 통폐합과 제도 개편이 절실한 형편이고 그런 변화와 개혁을 통해 이룩할 미래가 보이는데도 논리와 이성은 뒷전이고 감상과 갈등만 조장시키는 제안들이 산발적으로 제기되는 행태다.

지금 빛 좋은 개살구 모양의 지방자치제 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국정의 특정 부서나 담당자들을 향해 말할 성질도 아니고, 귀를 막은 정치권을 향해 소리쳐봐야 나올 답도 아닐 것이다.

비좁은 국토에서 방대한 대국 논리의 지방자치제를 흉내 내어 온 나라를 지역이기주의와 제국식 봉건제도의 망상으로 몰고 간 책임은 차치하고라도 이미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니 지역들이 어떤 모순과 행태를 보여도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국정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방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살림주머니를 모두 끌어 모은 중앙정부가 지방교부세나 국책사업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요리하는 전형적인 봉건구태는 진정한 민주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올바르게 지역은 지역 스스로의 이익을 창출하고 능력만큼 자신을 가진 지역단체를 자립시키는 지방자치제를 했다면 온 나라의 지역행정이 지금처럼 난맥상을 보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예산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중앙 정당들이 지방단체를 구성할 권익을 마음대로 갖고 노는 정당공천까지 휘두르고 있으니 지방자치제라는 말조차 꺼내기 민망한 제도가 되고 말았다.

그런 모순된 지방자치제도를 바탕으로 유권자들이 몰린 도심과 인근 지역 간의 통합을 논의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 일어났던 전주·완주의 경우가 그런 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금도 꾸준히 거론되는 영남권의 몇몇 통폐합 거론 지역은 이러한 이해충돌과 모순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유명무실한 도 단위를 그대로 군림시키거나 일제하의 행정제도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관행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한 새로운 행정 환경을 개혁하는 작업은 요원할 따름이다.

눈을 돌려 우리 지역을 바라보면 어떨까. 과연 지역민의 자주성과 독립성이 어떻게 발현되고, 지역 유권자가 원하는 살림을 꾸려나갈 환경과 행정을 스스로 결정할 그런 날을 앞당길 수 있을지 자못 염려된다.

다가올 선거에도 여전히 공천 줄서기에 여념 없을 사람들이 행정을 논하고 지역을 좌지우지하는 폐단을 근절하지 못한다면 지방자치제도의 무용론이 들불처럼 번져나갈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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