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포교와 봉사 활동으로 지역 사회에 불교의 소리를 내고있는 재가단체에 희망의 길이 아름답게 보여진다. 청년불자, 거사림불자, 사찰불자가 포교에 기둥이 되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불교의 현주소는 어떤가? 불교에 있어서 세 가지 필요조건이 있으니 바로 교조이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조직인 사부대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불교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워낙 영험하시고 수승한데 기인하는 것이지 결코 사부대중의 노력이 많아서 그렇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교가 한국사회에서 제일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처님의 위신력, 가르침의 완벽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사회의 저변에 현장포교를 다니다보면 절집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불교가 타종교에 비하여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지역 재가 단체에는 기초불교 교리를 이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반성해야 하며증진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포교현장에서 보면, 항상 활동하는 스님들과 재가불자 지도자가 아주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군포교에도 그렇고, 교도소나 병원 포교도 그렇고, 경찰서의 경승, 곳곳이 모두 보이는 얼굴들로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다른 불교지도자들은 사회포교에 미온적일 뿐 아니라 관심이 적은 것으로 사료된다.

부처님께서는 보살도의 완성은 육바라밀-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般若)바라밀-로 가르치셨다. 즉 보살도의 목적은 자타일시성불도-나와 남이 함께 성불국토를 이루는 삶이며, 자리이타(自利利他)―나와 남이 함께 이로운 길-를 가르치실 때에 보시라고 하는 나눔을 먼저 말씀하셨다.

그것을 통해서만 나머지 다섯 가지가 이뤄진다고 하셨다. 보살도를 성취하는 기초 가운데 기초가 바로 나눔이다. 그러므로 불자가 나눔에 인색하다면 결코 보살도를 이룰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나눔-보시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는 재시(財施)이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나눔이다.

이 나눔이란 물질적으로는 두 개 이상을 가지지 않았으면 남과 나누기가 힘들다. 설령 두 개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를 남에게 나눠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와 남이 함께 성불국토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끊임없이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생은 소유물로 생명을 삼기 때문에 무엇인가 내 주머니에서 나갈 때에는 죽기보다 싫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 싫은 기분을 기쁨으로 돌릴 때만 진정한 행복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법공양이다. 즉 심리적으로 안정과 화합을 주는 공양이며 나눔이다. 가진 것이 많은 이는 가진 것을 통하여 불국토를 이룰 것이요, 부처님 말씀을 많이 알고 있다면 그 앎을 통하여 불국토를 건설하여 갈 것이다.

셋째는 노동시(勞動施)이다. 가진 것이 변변치 않으면 남과 나누기가 힘들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쉽지 않다.

또한 불교에 대하여 아는 바도 없다면 남에게 포교하기도 힘들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부처님께서 복을 지을 기회를 열으셨으니 그것이 바로 노동시이다.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이다. 우리가 불국토를 이루려면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는 결코 극락왕생도 불가능하고, 인간정토는 더욱 멀고 멀 뿐이다.(법안스님)

우리 재가불자들은 자신의 영달과 소원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정진한다. 뿐만 아니라 어두운 곳에도 손을 내밀고 함께 극락으로 갈 수 있도록 자신의 소유물도 나누고, 자신의 마음도 함께 나누며, 또한 몸으로 함께 수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런 불자들이 많이 나올 때에만 사회가 한층 밝아지고 극락왕생을 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재가 불자의 정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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