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에 기회가 되어 개성을 다녀왔다. 개성관광객이 지켜야할 첫 번째 수칙이  북한땅에서는 절대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참 황당한 주문이다.

「대구(大邱)」는 조선시대 대구군(大丘郡)이었는데 이 구(丘)자가 공자의 이름과 같다고 해서 구(丘)를 구(邱)로 바뀌었다. 중국에서는 이미 금나라 때부터 주공(周公)과 공자의 이름을 피하도록 하는 성인휘(聖人諱)가 있었다.

봉건시대에 임금의 이름은 신성하기 그지없었다. 따라서 임금의 이름과 같은 한자는 쓸 수 없었고, 심지어 같은 음의 한자라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를 기휘 혹은 피휘(避諱)라고 한다. 정월(正月)을 다른 이름으로 서월(瑞月)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진시황의 이름이 정(政)이기 때문에 같은 음의 정(正)자 마저 기휘한 탓이다.

임금뿐 아니라 부모나 조상의 이름자도 기휘의 대상이 된다.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말해야 할 때 「홍길동」이면 「홍 길자 동자」라고 말해야 한다.

세종 때 명신 유관(柳觀)의 아들 유계문(柳季聞)이 경기도 관찰사로 제수 받았는데 관직의 이름의 관(觀)이 아버지의 이름을 침휘(侵諱)한다 하여 관찰사를 사임한다. 그러나 그의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의 아버지가 이름자 중 관(觀)을 관(寬)으로 바꾸었다는 내용이 임하필기(林下筆記)에 기록되어 있다.

남자가 스무 살에 관례를 치르고 성년이 되면 자(字)를 지어 주어 이름 대신 사용하게 된다. 자가 붙은 후에는 군부(君父) 존장(尊長) 앞에서는 본명을 동배(同輩)·벗·그 외의 사람으로부터는 자로 불리게 된다.

천주교에서는 앞으로 미사나 성가, 기도 등 공식 전례(典禮)에서는 ‘YHWH(야훼)’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교황청의 지침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자는 공경의 의미로 거룩한 신의 이름에 대한 기휘라고 할 수 있다.(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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