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구 거제수필회원

‘까치 까치 설날은 오늘이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내일이래요~’.

어렸을 적 부른 그 노래가 환청처럼 귀에 들린다. 어머니가 사두신 신발이며, 새 옷에 마음 설레며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설날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믐 저녁이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것이 우리 집안의 연례행사였다. 친정은 서울이고 시집은 황해도가 고향이라 모두들 떡만둣국에 특별한 애착이 있다.

친정어머니는 설이면 항상 사위들 준다고 특별히 만두를 많이 만드시곤 했다. 이건 큰 사위, 요건 둘째, 셋째네, 막내 사위 몫까지 가늠하시며 혼자서 허리 아픈 줄 모르고 기쁘게 만드셨을 장면들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또 한 봉지씩 싸 주셨다. 어머니의 사랑을 가득 안고 가듯 뿌듯했었다.

난 시집가기 전에 요리를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음식 만드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총각 때 여기저기 객지 생활을 하며 손수 반찬을 해봐서인지 음식을 잘 만드는 편이었다.

가난한 살림이라 반찬 가짓수는 적었지만 하나하나 정성껏 솜씨를 내시는 시어머님을 닮아 시집 식구들은 음식을 맛깔스럽게 잘하셨다.

갓 결혼해서였다. 남편은 일찍 퇴근해서 만두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 재료를 준비해 두라고 하였다. 그날 저녁 일러준 대로 만두 소를 다 준비한 후 우리는 마주 앉아서 만두피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소주병으로 밀가루 반죽을 밀고 둥근 대접으로 하나씩 찍어서 보름달처럼 동글게 찍어 냈다. 잘라낸 부분은 다시 반죽하여 또 둥글게 빚고 그렇게 하나씩 정성껏 만두를 만들고 나니 두 시간이나 걸렸다.

늦은 저녁이 되서야 우린 근사한 만둣국을 먹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배도 고픈데 대충해서 먹지, 도대체 왜 이렇게 긴 시간을 걸려서 하나씩 곱게 만들어야 하는지 심통이 났었다. 어쨌든 그때 정통으로 만두 만드는 법 하나는 확실히 배워두었다.

설 명절이라 장가간 아들 내외와 둘째, 셋째 모두 모였다. 오늘 저녁은 오순도순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다. 며느리는 커다란 양푼에다 만두소를 준비한다. 잘 익은 김장 김치를 한 포기 꺼내어 국물을 꼭 짜서 잘게 다져 넣는다.

친정어머니는 맛있는 김치가 만두 맛을 좌우한다고 하셨다. 두부도 좀 넉넉하게 넣어야 맛이 난다. 돼지고기 갈은 것을 넣고, 당근 ,양파 숙주나물 데친 것도 곱게 다진다.

파, 마늘 깨소금, 후추가루, 참기름으로 양념을 하고 잘 버무린 후 계란을 하나 깨트려 넣으면 준비가 끝난다. 찰지라고 밀가루에 계란을 하나 깨 넣고 반죽을 하여 만두피거리를 장만한다. 도마에 올려놓고 대충 썰어서 한 개씩 밀대로 밀었다.

“엄마 이게 뭐예요.”

큰아들은 만두피 모양이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동그랗게 예쁘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그냥 대충 해서 먹자고 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둥글면 어떻고 좀 길쭉하면 어떠냐, 입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만인데 하면서, 후다닥 해치우는 게 내 습관이다.

예전에 어른들은 송편이나 만두 빚는 솜씨가 고와야 예쁜 딸을 낳는다고 했는데 난 솜씨가 없어서인지 아들만 셋을 낳았다.

옛날 아빠와 만두 만들던 이야기를 해가며, 제각기 솜씨를 뽐내며 만두를 빚었다. 만두 만드는 솜씨도 가지가지다. 둘째 아들은 만두집에서 파는 것처럼 동그랗게 말아서 끝을 부치고 셋째는 갸름하게 반달처럼 빚는다.

설날 아침 차례상에는 우리가 만든 만둣국 위에 가늘게 자른 검은색 김과 노란색 계란 고명을 곱게 얹어냈다.

이 한 그릇의 만두에는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빙그레 웃는 남편의 미소도 떠 있고, 증조모님을 거슬러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 가족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오랜 전통 속에서 우리 가족이 손수 만든 이 만두야말로 최고의 명품 브랜드가 아닌가.

요즘 인터넷 카페에서 뜨는 사랑 차를 떠올리며 사랑 만두를 빚어본다.

질투 시기심 분노 교만 게으름 미움은 잘게 다지고 용서로 반죽을 한다. 원망과 절망은 펄펄 끓는 물에서 사라지고 희망으로 다시 태어난다. 만둣국에 감사를 솔솔 뿌려서 유머의 양념장을 찍어 한입 가득 베어 문다. 사랑만두를 우리 집 특허품으로 한 번 출시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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