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강 옥포교회 담임목사

레이첼이라는 이름의 간호사가 있습니다. 그녀가 간호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의시간에 나타난 담당교수는 강의 대신 간단한 문제가 수록된 시험지를 돌렸습니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지만 착실하게 강의를 들었던 레이첼은 별 어려움이 없이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문제 앞에서 막혀버렸습니다.

“우리 학교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아주머니의 이름은?”

그것이 쪽지 시험의 마지막 문항이었습니다. 이것도 시험문제라고 할 수 있나!

레이첼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아주머니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에 덩치가 큰 그 오십대 아주머니의 이름이 뭐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레이첼은 하는 수 없이 그 마지막 문제의 답안은 공란으로 두고 답안지를 제출했지요. 답안지 제출이 끝난 후에 한 학생이 마지막 문항도 점수에 포함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물론이지”

교수님이 대답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간호사로서 앞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와 관심과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라도 항상 이들에게 먼저 미소를 보내야 하고, 먼저 인사를 건내야 합니다.”

현재 수석간호사가 되어 있는 레이첼은 지금도 그 강의를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화장실 청소 아주머니의 이름이 도로시였다는 사실도….

이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하며 산다는 것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무관심하게 그들을 바라볼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무관심은 사랑과 배려와 따뜻함이라는 가치의 최대의 적이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제노비스 게이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1964년 뉴욕의 케서린 제노비스라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큐가든이라는 맨션 앞에서 강도에게 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그녀는 칼에 찔린 채 30분 이상을 거리를 헤매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 장면을 큐가든 맨션에 살고 있던 38명의 주민이 목격했지만, 누구 한 사람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의 이 여성은 그들의 무관심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사랑은 행함에 있는 것임을 일깨워주십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자기의 길을 간 제사장과 레위인은 무엇으로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돌봄 그리고 사랑의 수고라는 거룩한 의무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무관심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과 관심의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 만 사랑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시각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알게 되고, 그 고통과 아픔을 감싸 주며, 돌봐 줄 수 있습니다. 

제게도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하는 길에 만나는 한 분이 계십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그분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분에게 따뜻한 인사를 먼저 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