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길 거제수필문학회원

음식 천지인 세상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전문 요리 프로그램 또는 요리를 주제로 한 토크쇼, 건강관련 음식 프로그램 등이 방영된다. 오히려 또 다른 한편으로 다이어트에 관련된 요법과 식이요법이 한창이다. 우리의 삶이 풍요하고 다양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시절을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경우에 못 먹고 못 살았던 그때를 이야기하면, 측은한 눈초리로 “라면 사서 끓여먹지 그랬어요?” 하면서 말하던 이를 머쓱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과연 라면은 이 시대 최고의 대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주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라면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소비량이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라면도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는데, 이미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 유럽, 미주로 대단한 수출량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 라면을 흉내낸 짝퉁라면이 생겨났는가 하면, 러시아의 주말농장인 ‘다차’의 주된 간식은 우리나라 제품인 사각 용기라면으로 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 이 년 전인 1986년에 국내 최초의 대형 스포츠 행사인 아시안게임이 개최되었는데, ‘맨발의 라면 선수’가 우리 앞에 나타나서 모두를 감동시켰다. 키 163㎝, 몸무게 43㎏의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깡마른 소녀, 임춘애는 한국 육상사상 최초 아시안게임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국민들을 감동시킨 진짜 이유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육상 3관왕이라는 타이틀도 타이틀이지만, 그보다도 그 선수가 가난의 고비를 넘어서 우승했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영광의 인간승리 그날이 있기까지 하루를 라면 한 개로 때울 때가 많았으며, 밥보다 라면을 많이 먹었고, 따라서 그녀의 꿈은 ‘우유라도 많이 먹고 뛰어 봤으면…,’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서울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은 이미 전설 속에 묻혀버렸고, IMF시대와 한일월드컵을 지나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이제 쌀이 없어 라면을 먹는 경우는 극히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빈곤 가구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쌀과 최저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엔 라면을 소재로 하여 다양한 조리법이 인터넷을 통하여 개발 확산되고 라면 동호회까지 생겼다니, 음식의 진화는 감히 놀랄 만하다. 라면에 김치나 된장을 넣어 조리하는 것은 고전 중에 고전이고, 해물과 볶아서 이태리요리풍의 요리법도 있고, 치즈를 얹어 피자를 만들기도 하며, 중국식의 여러 요리로 변하는가 하면, 샐러드나 스파게티가 되기도 한단다.

어느 라면회사의 홍보물에 “인류 역사상 가장 맛있는 발명품은 라면이다.”라는 구절을 보았는데, 과장의 측면도 없진 않을 것이나, 나는 이를 인정하고 싶다.

미국 사람들이 햄버그를 가지고 유난을 떠는데, 우리 한국 사람이 ‘라면 만세’를 외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본다. 햄버거는 아시다시피 이제 사양 식품군에 속할 것이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요 비만의 주범으로 꼽힌 지 오래다. 이제 미국에서는 아시아의 ‘슬로우 푸드’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물론 라면이 ‘슬로우 푸드’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만의 주범으로 몰릴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홍길동 보다도 더 다양한 변신술과 퓨전요리에 적합한 이 라면과 그 문화를 우리가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라면의 발상지는 일본이라고 하는 게 통설로 되어 있다. ‘가라오께’의 발상지가 일본이지만, 노래방의 문화는 우리가 꽃을 피웠고, 또 세계적으로 수출하는 우리의 문화가 되었듯이, 라면 또한 그러한 추세임이 분명하다.

‘간단한 라면 한 끼’에서 이제 ‘라면 문화’로 확대되어 세계적으로 더욱 확산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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