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철근 일운면주민자치회장
여철근 일운면주민자치회장

수선화는 겨울 추위 속에서 힘을 길러 새봄이 되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운다. 땅속에서 추운 겨울을 견뎌 낸 수선화이기에 더 아름답고 그 자태가 더 당당한지도 모른다.

고(故) 강명식 어르신도 이런 역경을 이겨내 아름다움과 당당함을 지닌 수선화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공곶이에서 반평생을 사랑하는 반려자과 함께 수선화를 가꿔 왔을 것이다.

어르신이 병석에 눕고 지난해 타계하시면서 공곶이 수선화도 사라졌다. 인생의 유한함을 알려 주듯 지난 50년간 공곶이에서 수선화를 가꾼 사람도, 아름답고 당당함을 지닌 수선화도 함께 사라졌다.

지난 3년간 공곶이 수선화를 볼 수 없게 되자 많은 시민과 관광객의 불만이 쏟아졌다. 거제 9경 중 하나가 사라질 상황이었다. 

이런 여론을 받아들인 거제시가 공곶이를 직접 가꾸어 올해 아름답고 당당한 수선화가 피어나게 됐다. 거제시의 결단과 노고에 감사드린다.

지난해 거제시가 공곶이에 수선화 구근 7만본을 심자 지역 주민들의 기대가 높아졌고 수선화 축제를 열게 됐다. 

처음 하는 공곶이 수선화 축제 행사라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많은 준비를 했음에도, 이틀간 3만명 넘게 몰려온 관광객의 니즈를 맞추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축제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교통 정체·주차장과 셔틀버스 부족 등의 문제를 참아준 관광객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손님을 내려주고 쉬어야 할 시간에 길게 늘어선 버스 대기자를 두고 볼 수 없어 자발적으로 발벗고 나선 대전에서 오신 관광버스 기사·주말에 요청을 선뜻 받아준 지역 관광버스 관계자·몰려든 관광객으로 생활에 불편을 겪었을 지역주민·일운면 자원봉사자·거제시 및 거제경찰서 관계자에게 감사드린다.

벌써부터 내년 공곶이 수선화축제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몰려온다. 올해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더 나은 축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축제 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곶이 수선화에 반평생을 바친 강명식 어르신의 뜻을 이어받아 공곶이 수선화를 잘 가꾸고 지켜내는 것이다. 내년 축제를 위해 다시 각오를 다져본다.

그리고 거제와 관광객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고 떠난 강 어르신을 다시 그려본다. 어르신은 공곶이를 전국적인 명소로 일군 장본인이며, 지난해 5월 타계했다. 1969년부터 황무지나 다름없던 공곶이를 평생 반려자 지상악 할머니와 손수 일궈 계단식 밭을 만들고 동백나무와 종려나무·수선화 등을 심어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수선화 2개를 사서 심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삽과 괭이를 맨주먹으로 잡고 한계단 한계단 만든 돌계단은 어르신의 피와 땀과 혼이 서려 있다. 내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집 주변 밭에는 이른 봄이면 연노랑 수선화가 온통 지천으로 물들어 보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을 선사해 '수선화 천국'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어르신은 2011년 천주교 성지조성을 위해 본인 소유 토지 1400여평을 기부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수선화 구근 3만개를 일운면사무소에 기부했고, 앞서 2002년에도 수선화 1만주를 기부하는 등 헌신적인 거제사랑을 실천하기도 했다.

일운면은 어르신의 뜻에 따라 기증받은 수선화를 재배 증식시켜 일명 '황제의길'이라고 불리는 망양삼거리~망치정수장을 비롯한 일운면 도로 곳곳에 심어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분양도 하며 널리 확산시켰다. 

기부한 수선화가 30여만본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질 만큼 수선화는 어르신의 맑고 고운 영혼이자 삶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그저 예쁜 꽃을 가까이서 보고 느껴서 즐겁고, 그 꽃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니 또 행복하다던 어르신의 말씀이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운 메아리로 남아 있다.

이제 거제의 후손들이 어르신의 뜻을 이어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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