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러디스 빅토리와 피난민들 모습. @거제신문DB
메러디스 빅토리와 피난민들 모습. @거제신문DB

1950년 12월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미군과 한국군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철수작전을 펼친다. 

철수작전은 1950년 12월15일 시작돼 1950년 12월23일까지 이어졌다. 당시 흥남항에는 중공군을 피해 10만명에 가까운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마지막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정원이 60명에 불과한 화물 운반선이었다. 하지만 한국군과 현봉학 박사의 계속된 설득으로 배에 실었던 항공유 300톤 등 전쟁물자를 모두 버리고, 1만4000여명의 피난민들을 배에 태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23일 토요일 오후 2시54분 흥남부두를 출발해 12월24일 낮 12시30분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부산항은 UN군의 전함이 부산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미 100만명이 넘는 피난민이 부산에 거주하고 있어 정부는 피난민을 거제도로 옮길 것을 명령했다. 

12월25일 저녁 거제도 장승포항 인근에 도착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2월26일 오전 9시15분 피난민들을 장승포에 내렸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도 불리는 흥남철수작전은 인도주의 정신을 전 세계에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이 작전에 참여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만4000여명의 피란민을 거제 장승포항까지 안전하게 철수시킨 기록을 인정받아 지난 2004년 9월21일 '단일 선박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구조작전을 성공시킨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장승포 주민들은 고된 여정으로 지친 피난민에게 집에서 지어온 주먹밥을 나눠주고, 한켠의 보금자리도 내어주며 함께 새로운 터전을 가꿔 나갔다. 

이후 피난민들은 거제 곳곳에 피난민촌을 형성해 살았으며 1951년에는 거제지역에 20만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승포초등학교에서 배급 물자를 받고 있는 피난민들. @거제신문DB
장승포초등학교에서 배급 물자를 받고 있는 피난민들. @거제신문DB

 

★ 한국사 산책 = 장진호전투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국 제10군단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조선인민군의 연속적인 궤멸 이후 유엔군은 압록강까지 북한군을 몰아세우며 한국전쟁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1950년 10월19일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전쟁은 다시 팽팽한 격전을 이어갔다. 이때 미 제10군단 예하 미 제1해병사단은 서부전선 부대와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 규모가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을 벗어나기 위해 1950년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2주간에 걸쳐 철수작전을 펼치며 장진호전투를 이어간다. 

미 제1해병사단은 장진호전투로 중공군의 남하를 막는 동시에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해 함흥지역으로 철수하면서 흥남철수작전에도 큰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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