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거제수필문학 회원

시인은 노래한다. 그런데 계절을 따지면 봄과 가을이 가장 많은 것 같다. 또 하루를 따지면 한낮보다는 밤이 우세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본다면 봄과 가을의 밤에 관한 시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억측을 한 번 부려 본다. 그 많은 시 중에서 널리 애창되는 시는 복 받은 시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나는 학창시절에 시조를 즐겨 외웠는데, 짧아서 외기 쉽고 운율이 있어 리듬감이 좋았으며 종장의 여운이 내내 가슴을 적시는 까닭이리라. 옛날의 시조도 좋고 현대의 시조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시조가 한두 편도 아니건만, 오늘처럼 고요한 봄밤이면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라고도 불리는 시조가 떠오른다.

이조년은 고려 말의 학자로 호는 매운당(梅雲堂) 또는 백화헌(白花軒)이라 하는데, 이 시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시란 읽는 이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감흥이 자유롭게 상상될 수 있는 법, 나의 어설픈 감상을 용서하리라 생각하고 감히 봄밤의 정취에 빠져 들고자 한다.

이 시는 한시의 절제미와 시조의 운율과 정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반어법(反語法)으로 조용한 시어(詩語)들을 감흥의 극으로 올리고 있다.

첫 구절인 ‘이화에 월백하고’를 그냥 쉽게 넘어가면 이 시의 맛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다. 시인은 첫 마디에서 가벼운 치환(置換)을 쓰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월광(月光)에 이화백(梨花白)’ 즉, ‘달빛에 배꽃이 희게 빛나고’가 맞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배꽃으로 인하여 달빛이 하얗게 빛난다’ 또는 ‘배꽃에 흰 달빛이 어렸다’라고 읊으며 중장과 종장의 반어(反語)를 예고하고 있다.

시인은 중장에서 자규, 즉 두견새가 운다고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조를 읽으며 자규의 울음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는 모를 것이지마는’으로 시인은 읊고 있지만, 시인은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반어적(反語的)으로 ‘일지춘심을 안다’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종장에 있어서, 중장의 알고 모르고를 가지고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정(多情)도 병(病)이라는데’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나는 이 시조를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는데, 감히 ‘다정도 병’이라는 뜻을 어찌 알았으랴! 십 년쯤 지난 다음에 그 뜻이 다가오다가 이제야 좀 내 몸에 닿는 듯하다. 마무리 시어인 잠 못 드는 것쯤이야 누구든 그럴 수 있는 평범한 것으로 짧은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다.

다 같이 봄의 꽃이지만, 매화(梅花)와 도화(桃花)는 붉은 빛이 많이 나며 따라서 달밤에는 박꽃이 어울리듯이 하얀 빛의 배꽃이 제격이다. 춘흥(春興) 도도한 시인이 어찌 달밤의 배꽃 정취에 잠들 수 있으랴! 은하수는 기울어져 자정이 넘었건만 유심(有心)한지 무심(無心)한지 모를 자규마저 저리 울고, 나 같이 여린 가슴의 시인은 도저히 잠들기 틀렸으니 정 많음을 칭병(稱病)하여 밤샘도 잊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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