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최대윤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최대윤

지난 14일 거제면 대숲개(죽림)마을 입구에서 신명나는 죽림마을 별신굿판이 벌어졌다. 이날 낮 동안 세차게 내리던 비가 죽림마을 별신굿의 첫 순서인 들맞이당산굿을 앞두고 그치자 국가무형유산 남해안 별신굿의 보유자인 정영만(69)씨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참 기가 차지요. 날(죽림마을 별신굿 하는 날)잡은 걸 우찌 알고 이리 웃비가 내릴꼬."

지난 1987년 남해안 별신굿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그는 1996년 인간문화재에 지정됐다. 그는 내림굿을 받고 신을 모시는 무당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가족 친지를 따라다니며 무속과 관련한 기예를 배운 세습무(世襲巫)로 인간문화재가 됐다. 죽림마을 별신굿은 그가 9살 때 아버지를 따라 죽림마을에서 굿판을 열던 인연으로부터 벌써 60년째다. 

현재 남해안 별신굿보존회는 통영예능전수관을 중심으로 전승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가 남해안 별신굿을 배웠던 무대는 주로 거제였다. 

8대에 걸쳐 내려오던 남해안 별신굿의 전승은 그의 왕고모였던 정모연(1915~1989) 남해안 별신굿의 초대 예능보유자에 이어 2대 예능보유자인 할머니(고주옥·1910~1990)를 거쳐 그에게 이어졌다.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최대윤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최대윤

지금은 아들·딸·며느리까지 가업을 승계한 세습무가(世襲巫家)를 이뤄 수 백년 동안 남해안 별신굿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전국에 모여든 20여 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남해안 별신굿의 전통을 이어갈 또 다른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15일까지 거제면 죽림마을 일원에서 펼쳐진 죽림마을 별신굿 공개 행사에도 전국은 물론 멀리 타국에서까지 그의 제자들이 한데 모여 굿판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굿판에서 삼현육각을 직접 연주하거나 목청을 높여 굿을 이끌지 않는다. 이미 다음 세대에 남해안 별신굿 보존과 계승의 역할을 물려줬기 때문이다. 더이상 굿판에 역할이 없어 아쉬울 법한데 오히려 마을 사람들과 어깨동무하고 박수치며 굿판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선 예년에 비해 간소화된 굿판이나 규모를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4박5일 밤낮으로 굿판을 벌이고 동네 장정들이 10명 이상은 동원해야 나를 수 있었던 '띠배'를 기억하고 재연하기엔 지자체의 지원이나 이미 고령이 되어버린 옛 장정들의 기운이 아쉬울 따름이다.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최대윤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최대윤

안태고향 거제에 별신굿이 뿌리 내리길 

그는 통영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이후 아버지가 통영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통영보다는 거제의 어촌마을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났다. 

그는 남해안 별신굿은 거제에서 발생했다고 했다. 남해안 별신굿은 동부면 수산마을과 학동, 일운면 망치·양화마을, 남부면 다대·도장포·갈곶·저구, 동부면 가배마을 등 대부분 거제지역 어촌을 중심으로 행해져서다. 

그러나 거제뿐만 아니라 통영의 도서지방인 한산도와 욕지도·사량도·삼천포·남해 등 남해안까지 풍어와 안녕을 빌던 남해안 별신굿은 거제가 '안태고향'이지만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삶과 닮아있다. 

그에게 거제는 선조들이 지난 수백년 간 터전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기에 남다른 곳이다. 해마다 고조할아버지의 묘가 있는 영등(둔덕면 학산)과 증조할아버지의 묘가 있는 장승포를 찾고 거제에서 굿판을 벌이는 일도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운명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최대윤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보유자 정영만 씨. @최대윤

10여년 전 죽림마을 별신굿 취재 당시 그는 기자에게 거제에도 남해안 별신굿 전승관이나 별신굿 민속촌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낸 적이 있다. 

별신굿은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는 '국악의 정수'이자 거제섬에 전해지는 모든 무형문화재의 뿌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거제가 뿌리인 남해안 별신굿에 가장 소홀한 곳도 거제다. 

남해안 별신굿이 전승되는 지역은 물론 문화재청까지 남해안별신굿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거제시민의 관심과 거제시의 지원은 늘 아쉽다. 

그는 "나도 그렇고 남해안 별신굿도 그렇고 거제가 안태고향인데 이 땅에 뭐라도 남기고 싶은데 그 일이 참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걸음마 때부터 지켜보고 배워오고 또 전승시킨 남해안 별신굿은 민간신앙의 흔적이 아닌 거제사람들이 자자손손 이어오던 화합과 단합의 의미가 담긴 '거제의 혼과 얼'을 담은 종합예술 축제였다. 그의 60년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가장 거제다운 축제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방안과 거제시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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