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된 대규모 항일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약 한 달 뒤인 4월3일과 4월6일 거제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아주장터와 옥포를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펼쳐졌다. 

거제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3일 이운면 아주장터에서 시작됐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독립만세시위를 모의한 윤택근(尹澤根)은 이주근(李柱勤)·이인수(李麟洙)·이공수(李恭洙) 등과 거사를 결의했다.

4월1일 이운면 아양리 서당에 모인 윤택근 등은 종이 10여매에 '대한제국독립만세(大韓帝國獨立萬歲)'라고 크게 쓴 격문을 만들었다. 4월2일 시위 주모자들은 아주리 이선이(李仙伊) 집에 모여 회합했다. 회합 후 이인수는 이중수(李仲洙)와 함께 격문을 눈에 잘띄는 인가의 대문에 붙이거나 아주장터 길 위에 뿌렸다.

4월3일은 아주리 장날이었는데, 윤택근·이주근·이인수·이중수 등은 오후 7시30분경 장터에 모인 이운면과 연초면 주민 2500여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시위 소식이 전해지자 통영헌병분견소와 송진포 해군방비대, 가조도 해군경비대 등 헌병과 경찰들이 출동해 시위를 진압했다.

이날 시위로 윤택근·이인수·이주근 등이 체포돼 윤택근은 징역 1년, 이인수와 이주근은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또 주종찬(朱宗讚·1893~1933)은 4월3일 옥포교회 교인들과 함께 아주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했으며, 4월6일 이운면 옥포리 망덕봉 앞에서 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옥포를 출발해 10리거리의 아주시장터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 행진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민중들은 아양리 소재 이운면사무소를 점거했다.

예전 거제시 아주동 지역에서 재현된 아주3.1만세운동. @거제신문DB
예전 거제시 아주동 지역에서 재현된 아주3.1만세운동. @거제신문DB

 

★ 한국사 산책 = 3.1민족해방운동

1919년 3월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항거해 전국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시위는 만주와 연해주·미주 등지로 확산되는 등 해외 한인들도 동참했다. 그야말로 범민족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일제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3.1운동을 진압했으나, 이에 표출된 다양한 계층의 독립의지는 이후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한 차원 높이는 동력으로 승화됐다. 3.1운동은 원래 고종의 장례식인 3월3일에 맞춰 계확됐으며,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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