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옛날 어렸을 적엔 시간이 참 느리게 갔다고 기억된다. 시간이 빨리 흘러 어른이 되면 꼭 하고 싶은 게 많이 있었다. 이를테면 면도기를 이용해 수염을 깎고 싶었다. 면도날을 갈아 끼워서 사용하는 수동식인데 위험하다고 만지지 못 하게 하니 더욱 궁금해졌다. 커피도 마시고 싶은데 아이들은 안된다고 한다. 양복에 넥타이도 매고 싶었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빨리 시간이 흘러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너무 빠르다. 달도 차면 빨리 기울듯이 살같이 빠른 초고속 인생 열차에 탄 느낌이 든다. 해가 바뀌어 스스로 내 나이를 살펴보며 놀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인생이 짧다는 표현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삶이 주는 무게를 느끼며 괜히 분주해지는 것 같다.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는 것은 보물을 손에 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 같아 시간의 진정성과 갈급함이 없었다. 시간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일 시간을 돈을 주고 사서 사용한다면 우리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시간을 다룰 것이다. 돈도 돌아올 수 있고 재산도 돌아올 수 있으나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저축도 안 된다. 은행은 현찰이나 수표는 받지만, 시간은 받지 않는다. 운동경기에서는 작전을 세우기 위해 타임아웃(time out)을 불러 경기시간을 중단시킬 수 있지만, 인생 경기장에서는 타임아웃이란 없다. 

이런 말이 있다. "1분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싶으시면 방금 기차를 놓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라. 1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싶으면 사고의 순간, 간발의 차이로 살아난 생존자에게 물어보라. 100분의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물어보라."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매 순간이 바로 값비싼 보화이다.

고려 말기 원종부터 충혜왕 때까지 활동한 학자 우탁(禹倬·1263~1343)의 작품 '탄로가(歎老歌)' 성격의 시조에 보면 "한 손에 막대 잡고"라는 평시조가 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어, 늙는 길 가시덩굴로 막고, 찾아오는 백발 막대로 치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인간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늙어감'과 '죽음'인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사람은 불로초(不老草)를 찾아 심산유곡(深山幽谷)을 헤매지 않았던가? 탄로가에 속하는 이 작품은 '늙어감'에서 나아가 인생무상을 달관한 경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 세월(늙은 길)과 늙음(백발)을 구상화(具象化)한 공감각적(共感覺的) 이미지를 통해 늙음에의 안타까운 심정을 간결하고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빨리 흐르는 세월을 교훈 삼아 시간의 때를 깨닫게 해 준다. 

성경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또한 시편 103편 15-16에 보면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라고 말씀한다. 안개가 자욱해도 잠시 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존재, 아침에 돋는 풀과 같고(시 90:5),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그림자(역상 29:15) 같은 아주 짧은 유한한 인생임을 깨우쳐 주므로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왕복 차표를 발행하지 않는다. 일단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라는 프랑스의 극작가 로맹 롤랑의 말처럼 시간 가는 것이 빠르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제 인생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몹시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의 가치를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상급을 위해 일할 기회가 되어야 함을 한해가 바뀌는 새날의 교훈이기도 하다.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알아도 눈을 뜨지 않으면 여전히 깊은 밤중이듯, 그러므로 새벽은 새벽에 눈 뜬 자만이 볼 수 있음과 같이,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빚어져 더욱 정성스럽게 그리고 생명과 평화를 파종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 새날이다. 감격스럽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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