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영숙 칼럼위원

결혼 초 시어머니께서 “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가장 억울했단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39살에 혼자되셔서 가난한 살림에 종가집의 종부로서 아들 3형제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셨으니 그 삶의 여정에서 저절로 나오는 한 맺힌 말씀이셨다.

얼마 전까지 “엄마가 뿔났다”라는 제목의 주말연속극이 꽤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가족상담을 하는 나는 시간이 허락될 때 이런 가족드라마를 즐겨 보곤 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탐색해 보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 이 연속극에서 주인공 시어머니의 휴가는 주인공과 같은 연배가 아니더라도 많은 여성들에게 있어 공통의 희망사항이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을 선택한 여성들이라면 며느리, 아내, 어머니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에 공감하고 이러한 휴가를 간절히 바라며 대리만족감을 맛보았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연속극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했었다.

시어머니의 휴가는 많은 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시어머니의 휴가로 인한 가사부담은 고스란히 며느리에게 지워졌고 단 1~2개월의 휴가기간 동안 가족들은 어머니의 휴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끼도록 했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떠안는 것은 여성의 몫으로 남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여성들로 하여금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 연속극에서 시어머니의 휴가에 대한 가사부담을 집에 있는 남성들의 몫으로 남기거나 가사관리사의 도움을 받는 제3의 방법등을 찾았더라면 시어머니의 1년 예정의 휴가가 단 1~2개월에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연속극을 보면서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에 대하여 몇가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째 배우자에 대한 삶의 가치관에서 남편에게 있어 부부의 삶은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네 인생도 내 인생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아내들은 ‘내 인생이 네 인생이고 네 인생이 내 인생이다’ 라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남편자신은 독립적이고자 하면서도 아내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반면 아내는 모두 내 인생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나 독립적인 남편과 자식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늘 서운하고 나만 희생하고 사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을 갖게 된다.

부부는 부부이기 이전에 각자 독립적인 존재이므로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네 인생은 네 인생이다’ 로 자리매김하되 약간의 교집합이 있을 때 건강한 부부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모성이데올로기와 모성결핍콤플렉스이다.

우리사회에서의 모성은 맹목적인 사랑과 희생을 강조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젊은층들은 결혼의 조건으로 맞벌이를 요구한다는데 정작 결혼 후 육아와 가사의 대부분은 여성의 책임으로 지워져 있어 직장여성들은 늘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남편에 대해서도 “남자는 애야”로 표현하며  모성이데올로기를 남편에게 까지 확대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엄마나 아내 역할을 소홀히 해서 가정적으로 덜 행복할 것이라는 일반인들의 편견으로 인하여 모성결핍콤플렉스의 부담도 안고 살아간다.

셋째 우리사회에서 ‘남편 기 살리기’는 있어도 일상의 삶에 진이 빠진 아내에 대한 배려는 없다,

요즈음 경제 불안으로 남편들의 불안감과 부담감이 커지고 아내와 가족들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경제활동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가사노동과 자녀양육, 직장생활로 인하여 진이 다 빠져 있어도 남편과 가족을 위하여 아내를 죽이는 일방적인 순교자가 되기를 강요한다.

부부가 서로 기 살려주기를 하거나 어느 쪽이든 ‘사회적 약자 기 살리기’가 되면 얼마나 바람직할까 생각해 본다.

우리사회는 양성평등에 있어 많이 변화되어 가고 있고 가부장제 사회라는 말을 꺼내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남성들의 반박을 받지만 아직도 남성과 여성이, 남편과 아내가 서로 윈-윈 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광고 문구가 아닌 진심으로 “여자라서 행복해요” 라고 표현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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