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서울대학교 법학부 면접시험문제 중에 「성감별 후 태아를 낙태시키는 행위의 책임은 의사에게 더 있는가, 당사자에게 더 있는가?」를 묻는다. 대답이야 자기 소신대로 하겠지만 이런 논의는 오래 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성감별의 주된 이유는 남아선호사상에 기인한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한국적 모럴(moral)은 부부중심이 아니고 부자(父子)중심의 가부장제의 전통 때문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칠거지악(七去之惡)에 몰려 이혼을 당하기도 했고, 집안에 첩을 두거나 아내를 대신하는 직업적인 「씨받이」부인을 들여 놓아도 감내해야 하는 비정한 기습(奇習)까지 현실로 받아 들여야 했다.

결혼한 여인네가 아들을 낳기 위한 노력은 가히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아들을 순풍순풍 잘 낳는 아낙의 속곳을 얻어와 입기도 하고, 도끼를 이불 밑에 넣어 두거나 부처님 코를 몰래 떼와 갈아 마시기도 했다. 부부관계도 1,3,5,7의 기수일에 합방하고 장지문 밖에서는 합방이 끝날 때까지 무당이 경을 읽기도 했다.

입춘이나 우수에는 부부간에 술을 한 잔씩 마시고 합방하면 유효하고, 2월 을유일(乙酉日)에 북쪽으로 머리를 하고 합방하면(北首臥合) 유효하고, 배꼽에 볶은 소금을 담고 그 위에 쑥뜸을 하는 등 아들 낳는 비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들을 낳아야 살아가는 한국 여성의 잔혹한 수난사는 현대라고 해서 방법만 다르지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다. 1980년대 초에 보급된 초음파 기계로 인해 아들을 골라 낳는 일이 잦아지더니 1990년 이후 성비(性比)는 균형이 크게 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정부는 태아 성감별을 못하도록 법으로 막아 버렸다.

그런데 지난 7월 31일 태아의 성감별 고지를 금지한 현행 의료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부모의 알권리를 인정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그와 더불어 이젠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성 감별과 낙태도 꽤 줄었고 성비도 2006년 이후 106으로 안정되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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