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영 자유기고가

② 음산함을 웅대함으로 만든 빈 시의회의 ‘명예묘지 추진법’ 제정

“장묘문화도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여행 중에 들린 프랑스 건축가 브로니야르가 설계한 정원식 묘지 ‘페르 라세즈’와 하이델베르크의 시립묘지, 스위스 브리엔츠의 작고 아담한 마을묘지들을 둘러보며 느낀 점이다.

특히 파리의 ‘페르 라세즈’ 공동묘지는 유명 예술인들의 무덤이 아주 많은데 이사도라 던컨, 마리아 칼라스, 들라크루아, 앵그르, 모딜리아니, 쇠라, 알퐁스 도데, 오스카와일드, 쇼팽, 로시니, 이브 몽땅, 오스카 와일드, 짐 모리슨 등의 무덤이 있다.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예술가들의 넋을 기리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서 즐겨 찾아 파리 여행 필수 코스 중의 하나로도 손꼽히는 곳이다.

산책 나온 시민들이나 책을 읽고 있는 젊은이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까지 많은 이들이 사랑해 파리의 자랑이자 쉼터이며 세계의 명소가 되었다. 대표적인 묘지 공원화의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전쟁 당시 의기소침하던 시민들을 위해 흥겨운 왈츠를 작곡하였고 그 인기는 빈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춤곡이 되었다.

그의 일생의 역작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역시 세계적인 명곡이다. 그의 장례 당시에는 빈 인구의 3분의 1이 참여하였다고 한다. 사랑하던 아내와 함께 영원한 동반을 하며 잠들어 있다.

빈의 중앙묘지도 존경하고 흠모했던 예술가를 기리고, 아름다운 조형작품 같은 묘비예술과 공원 같은 문화휴식공간을 즐기기 위해 매년 많은 문화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중앙묘지는 이제 빈의 또 다른 관광상품이자 명품 문화명소가 되었다. 원래 왕족들의 사냥터였는데 유럽 전역의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묘지 디자인을 공모하여 독일의 건축가 ‘칼 요나스 뮐리우스’와 ‘알프레드 프리드리히 블룬트쉴리’의 작품 “음산함에서 웅대함으로”가 당선되었고 이 설계를 바탕으로 건축되었다.

중앙묘지가 오늘날과 같은 장묘법을 제정한 것은 1970년. 모든 빈 시민은 사후에 시에는 관리하는 공동묘지에 묻힐 권리가 보장되며 매장의 의무와 가족묘의 사용, 매장장소와 무덤이용에 관한 규칙 및 사용할 수 있는 장식물에 관한 조항 등이 엄격히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각자의 무덤에는 주소처럼 고유번호가 있어 방문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컴퓨터로 일괄관리하고 있으며 10년 단위로 무덤 관리비도 지불해야 한다. 매장묘지와 화장장, 납골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매장묘지는 한 묘소에 4기까지 안치할 수 있으며 대부분이 가족묘이다.

서양 음악사에 가장 위대한 천재로 ‘음악의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은 빈에 35년간 살았다. 귓병으로 무척 신경질적이었던 그는 이웃과 마찰이 잦았으나 그가 사망했을 당시 비엔나의 모든 시민들이 비통해 하며 장례식장엔 2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전 세계의 음악인들이 성지 순례를 희구하는 곳, 필자도 평소 좋아하던 작곡가들의 흔적을 찾는 것을 꿈꾸다 방문한 빈 중앙묘지 제32A구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등 묘소가 안장되어 있었다.

특별 명예묘지 구역은 정문을 지나 첫 번째 교차로에서 왼편으로 ‘Musiker(음악가)’라는 조그만 팻말 하나가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묘비 조각들은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해 사실적 기교의 섬세함, 현대미의 추상조각 등으로 다양하게 형상화 되어 있었다. 예술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묘비들도 많아 조각공원에 들린 기분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대리석을 밀가루 주무르듯 자유자재이다. 얼마나 섬세하게 깎아놓았는지 묘비들만 종일 구경하여도 질리지가 않는다.

특히, 단순한 묘비명이 아니라 고인들의 과거와 장기(長技)를 회상할 수 있는 사실적인 묘비 조형물들에 눈이 자주 갔다. 바이올린 연주와 사냥에 뛰어났던 할아버지, 뜨개질을 잘 했던 할머니 등등 후손들은 그렇게 망자의 상징적인 대표 이미지를 조각해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슈베르트는 빈에서 태어나 빈에서 죽었다. 생전에 베토벤을 몹시 존경하였다던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관을 운구할 때도 직접 도울 정도였다. 그의 유언은 베토벤의 곁에 묻히기를 소망하였고 뜻대로 되었다.

누군가 조금 전에 다녀갔는지 채 시들지 않은 장미가 놓여진 묘비도 있고 많이 낡아 보수가 필요한 무덤도 있지만 묘지 전체를 아우르는 연초록 잔디와 색색의 꽃, 나무의 녹음에 감싸여 평온하고 장중한 기운이 괜히 센티멘탈한 감상에 빠지게 하는 곳이다.

모든 것의 끝인 ‘죽음조차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사랑하던 인연을 잃은 애달픔과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숭배의 경건함이 조우하는 녹지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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