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바깥에서 술 먹다가 늦으면 집에 가서 한잔하자며 술친구를 데리고 오면 잠들었던 아내가 일어나 술상을 봐준다. 지금이야 아내가 술 취해 들어오면 남편이 얼른 약 사러 나가야 하고, 나갔다가 동네약국이 문 닫았다고 그냥 왔다가는 간 큰 남자가 되는 요즘 눈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여간 간 큰 남자가 아니면 휴일이라고 하루종일 소파에 드러누워 TV보기도 힘들다. 아내가 연속극을 보고 있는데 야구를 보려고 채널 돌리는 건 감히 바랄 수도 없는 일이고, 아내가 연속극 볼 동안 집안일하고 청소기 돌리고 세탁기도 돌리고 개수대에 널브러진 그릇도 씻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더러는 극장이나 관광지 여자화장실 앞에서 여자 핸드백을 들고 서서 기다리는 남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가방을 들어주는 문화는 간 큰 남자의 시대가 끝난 현대문화의 산물일까 아니면 오랜 전통에서 연유된 것일까?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여자의 옷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개미같이 가는 허리에 치마를 분수처럼 풍성하게 부풀려 곡선미를 극단적으로 과장한 드레스이다. 이런 여성 드레스에는 포켓을 달 수 없었다. 그래서 여성의 소지품을 넣은 가방을 귀족의 경우에는 하인이, 평민들은 동행한 남자가 들고 다녔다. 여성이나 남성에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성이 자신의 소지품을 스스로 가지고 다니기 위해서 발명된 것이 핸드백이다. 그러고 보면 핸드백의 발명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따라서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가방은 여성이 든 게 아니라 남자의 몫이었다.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손에는 핸드백과 양산까지 들고 있으니 마차를 타거나 현관문을 스스로 열 수 없어 옆에 있는 남자가 대신 열어줬다. 이 문화가 근대에 와서는 차를 탈 때 남자가 차문을 열어주는 매너로 굳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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