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주 거제수필문학 회원
원동주 거제수필문학 회원

바람이 분다. 이내가 낀 것처럼 하늘이 우중충해진다. 어제의 일기예보가 이리도 잘 맞아 떨어지는지 거리는 뿌옇게 황사가 깔리기 시작한다.

황사는 겨울 내내 얼어 있던 건조한 토양이 녹으면서 미세한 모래먼지가 고공으로 올라가 대기 중에 떠다니다가 상층의 강한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 부근까지 운반되어 온 것이다. 주로 몽골과 중국의 고비지역 등에서 발생한 모래먼지다. 자연의 테러라 불릴 만큼 인류에게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황사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한국로타리 총재였을 때였다.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몽골을 푸르게'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환경변화에 따른 온난화와 사막화를 예방하고 몽골 고비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황사를 방지하기 위해 그곳에 방풍림조림사업을 계획하고 현지답사 차 방문하게 되었다.

몽골 바얀의 고비(Gobi)지역은 참으로 광활한 사막지대였다. 처음 그곳에 두 발을 디뎠었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그 막막한 풍경은 초등학교 사회책에서 보았던 낙타와 모래산으로 이루어진 상상의 땅도 낭만의 땅도 아니었다. 몽골어로 '사람과 짐승이 살기 힘든 땅'이라는 '고비'라는 의미가 피부로 느껴져 왔다.

영하 30도의 추위와 맹렬한 더위만이 자리를 바꿔가며 인간의 방문을 한사코 거부하는 그 땅, 무릎 닿는 풀 한 포기 없고, 그늘이 되어 줄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았고, 마른 목을 적실 물 한 모금 찾기 어려운 그곳에 방풍림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어쩌면 계란에 바위치기 같은 무모함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앞섰다.

황사는 결코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참사일지도 모른다. 과도한 방목과 산림벌채, 그리고 난개발로 인한 자연자원의 고갈로 생겨나는 사막의 확대는 황사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의 계획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래산의 이동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산은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면서 초지를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근래에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나무를 심는 일은 자주 있지만 생존율이 20%를 넘기지 못한다고 하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모래산의 이동을 막지 못한다면 나무를 심어본들 노력에 비해 얻어지는 소득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곳 생태연구소에서는 '돌 방풍틀'이라는 독특한 설계와 방법으로 모래산의 이동을 막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 뿐이 아니다. 지역의 풍토에 알맞은 수종의 선발과 나무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양묘장의 설치, 지하수의 개발과 식재 후의 관리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인간이 되돌리기 위해 눈물겨운 싸움은 오랫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고비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은 저 광활한 땅의 넓이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이 사업이 힘들다 하더라도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심고 싶었다. 강가의 조그만 돌멩이 하나가 그 강의 물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의지가 중요하지 않는가?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원대한 꿈이 있다면 고비사막이 아니라 사하라사막이라 할지라도 바꾸어지지 않겠는가?

황량한 고비사막의 들판위에 숲이 우거지는 꿈을 꾸었다. 천지를 뿌옇게 만드는 모래바람이 아니라 나뭇잎 흔들며 간지럽히는 명지바람이다. 100m 앞이 보이지 않는 장막을 친 것 같은 흙먼지가 아니라 이른 새벽 솔숲 사이를 휘돌아 강물처럼 흐르는 안개 빛이 부드럽다.

여름밤이면 사막의 밤하늘에 수놓아진 모래알만큼 무수한 별자리가 꽃밭을 이루고 있고, 멍석에 누워 별을 보다가 스스로 잠이 드는 어린 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번져나는 꿈을 꾼다.

사람이 살기 힘든 죽음의 땅 고비가 아니라 살고 싶은 생명의 땅이 되는 날, 고비는 지구환경의 중심이 되어 맑은 하늘과 숨 쉴 공기를 선사하며 생명의 성장을 주도하는 축복의 땅이 되리라

이 화창해야 할 봄날에 찾아온 불청객 황사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창문의 틈이 없는지 일일이 살펴야 하고, 베란다의 빨래도 걷어 옮겨 놓았다. 마스크도 찾아 써야 했다. 걸을 때마다 다리에 휘감겨오는 것 같은 모래바람, 빛을 막아선 누런 먼지는 우울한 아침을 만들어 놓았다. 

이 황사가 몽골 바얀의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마지막 황사바람이기를 바랬다. 내가 심은 나무 몇 그루의 힘이 얼마나 세랴마는 나무가 조금씩 커 갈 때마다 황사는 조금씩 옅어지리라 확신한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