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군자 거제수필문학 회원

나의 오른손 검지에 반지 하나가 늘 끼워져 있다. 18금으로 만든, 닳아서 형체가 많이 마모된 오래된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묵주기도 즉 로사리오 기도라 한다. 로사리오는 장미의 꽃다발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기까지의 전 생애를 묵상하면서 드리는 기도의 꽃다발이다.

묵주는 본디 나무 또는 유리구슬을 실에 꿰어 만든 것이다. 이 묵주는 늘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 틈나는 대로 기도할 수 있게 반지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묵주반지가 손에 끼워져 있으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나의 손에는 묵주반지 외에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다. 기혼자라면 대부분 갖고 있는 결혼반지조차 내게는 없다. 결혼 초 일이 년 지녀 본 이래 결혼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결혼을 증명할 그 어떤 물건도 내게 남아 있지 않다.

그리 넉넉하지 않지만 궁색하지도 않은 친정에서 자라 초중고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니다 남편과 인연이 되어 결혼하고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부모님께서는 칠 남매의 맏이로 형제들 돌보느라 고생한 딸을 식구 단출한 지차에게 시집보내야 한다며 장남이 아닌 혼처를 찾고 계셨다. 부모님께서 여러 혼처를 대며 맞선 보기를 권하셨지만 모든 혼처를 마다하고 남편과 결혼했다.

집안의 장손이면서 층층시하에다 형제는 많고 어느 것 하나 부모님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셨지만 워낙 완강히 고집 부리는 딸에게 두손 들고 결혼 승낙하셨다.

시아버님께서 일제시대부터 과자공장을 하셔서 꽤 넉넉한 살림이셨으나 대형 제과회사가 생기면서 대부분의 과자공장은 차츰 문을 닫게 되고 시아버지께서도 다른 업종을 찾게 되었다.

제과업으로 번 재산 대부분을 수산업자에게 사채를 놓으셨으나 사라호 태풍으로 실패한 채무자로부터 한 푼도 건지지 못하셨다고 한다. 제과업 대신 선택한 것이 양계업이었는데, 엎친데 덮친다던가, 돌림병이 돌아 수백 마리의 닭들이 폐사되기 여러 차례 가산은 점점 기울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큰아들인 남편과 시동생, 시누이를 대도시에 유학 보내고 학비 대시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셨다. 다급한 나머지 생각할 겨를이 없이 빚을 내어 쓰신 결과 재산이 순식간에 거덜이 나 버린 것이다.

수백 평의 대지에 안채, 바깥채, 공장 등 집 덩어리만 보고 꽤 부자인 줄 았았는데,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곪을 대로 곪은 그야말로 속 빈 강정이었다.

당시 소견으로 며느리 들이고 집안 망했다는 소리 안 들으려 친정에 손 벌리고 결혼 예물 다 팔아 조그마한 책 대여점을 시작했다. 남편이 다니던 직장 동료의 부인이 잘 안돼서 폐업하려던 가게인데 앞뒤 가릴 겨를 없이 무턱대고 인수했다.

상호를 ‘와글와글’이라 하고 간판을 새로 제작해서 걸었다. 궁하면 통한다던가? 안돼서 폐업하려던 가게가 그야말로 상호대로 ‘와글와글’이었다.

그때부터 십여 년, 나의 인생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시부모님의 부채 갚으랴, 형제들 결혼시키랴, 학비 대랴 나의 생활이란 꿈도 꿀 수 없는 각박한 삶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결혼반지를 낄 수 없었던 나의 손에 묵주반지는 기도 드리는 도구이자 장신구 역할을 했다. 나는 묵주반지를 끼고 있지만 실제 기도를 잘하지 않는 편이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기도라는 것이 무엇을 어떻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원의 기도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무슨 부탁이 그리도 많은지… 온갖 은총으로 살아가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한 탓인가, 첫아이 아들을 낳고 구년 만에 딸을 낳았는데 그후 디스크를 앓게 되었다. 구급차에 실려 가기 수 차례, 가사일조차 할 수 없어서 집안에 식모를 두고 사는 신세가 되었다. 심할 때는 대소변을 받아내는 형편이었다.

1988년 10월 8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기적이 일어나 그 지긋지긋하던 디스크가 눈 깜박하는 사이 순식간에 나았다. 남편과 아들딸은 물론 당사자인 나조차 믿을 수 없었다. 벌써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절망의 늪에서 광명의 신천지가 펼쳐진 듯 새로운 희망의 삶으로 변화되었는데 무엇을 더 바란다면 욕심일 것이다.

그런 내가 손에서 묵주반지를 내려놓지 못함은 나를 억제하고 다스리고자 함이다. 사람은 성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욕망, 질투, 분노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죄의 유혹을 받기 마련이며 또한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유혹을 받을 때마다 묵주반지를 보며 자제하고 인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낌없는 사랑과 은총을 조건 없이 주시는 그분께 부끄럼 없는 삶을 봉헌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자기 억제를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늘 간직하고 있다. 선행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자기 억제는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지니고 있는 부적과 같은 것이다.

우리 모두 마음에 묵주반지 하나씩 간직한다면 미워하거나 시기하지도 다툴 일도 훨씬 적어지지 않을까?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덕목일 것이다.

반지야! 나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영원한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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