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윤일광 시인/거제문화원장

기원전 11세기경 중국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였던 주왕(紂王)은 달기(妲己)라는 여인을 총애했다. 중국 역사상 희대의 악녀중 한 사람이지만 '매혹적인 여성'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이를 한자권에서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하고, 유럽권에서는 아름다운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여인이란 뜻의 '팜므파탈'이라 한다.

고서에서는 달기의 미모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구름처럼 검게 늘어진 머리카락, 살구 같은 얼굴, 복숭아 같은 뺨, 봄 산처럼 옅고 가는 눈썹, 가을 파도처럼 둥근 눈동자, 풍만한 가슴, 가냘픈 허리, 풍성한 엉덩이, 날씬한 다리, 햇빛에 취한 해당화나 비에 젖은 배꽃보다도 아름답다'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달기를 구미호의 화신으로 보았을까.

달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여인 중 한 사람이지만 음탕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여인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우리는 여자가 하는 짓이 간사스럽고 엉큼할 때 '여우 같은 년'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달기정(妲己精)'이라 한다. '달기 같은 년'이라는 뜻이다.

달기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말이 주지육림(酒池肉林)이다. 술로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는 고기를 매달아 숲을 만들어 남녀로 하여금 발가벗겨 그 속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모습을 보며 즐겼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7년을 걸쳐 만든 화려한 궁전 녹대(鹿台), 숯불에 달군 구리기둥 위에서 죄인을 통째로 굽는 형벌인 포락지형, 충신 비간의 심장을 꺼내게 한 일 등 그의 간악함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대부분의 기록은 야사나 소설 '봉신방(封神榜)'에서 기인한다. 사실 그녀가 실존 인물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백제멸망의 당위성을 위해 삼천궁녀라는 조작된 협의를 덮어씌운 것처럼, 상(商) 왕조를 멸망시킨 주(周)나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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