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강 옥포교회 담임목사

영국의 <더 타임즈>가 ‘이 세상에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하나의 주제들 두고 당대의 저명한 작가 몇 사람에게 에세이를 써 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G. K. 채스터턴입니다. 그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짧은 에세이를 쓴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글의 분량에 반비례하는 강력한 한 문장으로 구성된 에세이를 남겼습니다.

그 글은 두 단어로 된 한 문장이 전부였습니다. “I am.” (나입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 문제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나입니다.>라는 가장 강력하고 지혜로운 답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느냐고요?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계속해서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구요? 왜 하나님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계시냐구요? 그건 다른 누구의 책임이 아닌 바로 나 때문입니다. 내 탓입니다.

한 동안 <내 탓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차량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티커를 차량 뒤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 글귀를 읽고 마음에 담아야 할 사람들이 자신이 아니라 마치 차 밖에서 그 스티커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네 탓입니다.”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태도가 그런 것 같습니다.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의 탓과 책임을 지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생각할 때가 대부분이지요.

스스로의 문제를 인정할 때도 깨끗하게 인정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향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공동체의 변화와 진보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바야지드라는 사람은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불의한 세상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러나 내가 중년에 이르러 내 인생의 절반이 덧없이 흘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러나 나의 가족과 친구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나는 노인이 되었고, 지금 죽음을 앞두고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내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했더라면 내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보람있게 살았을 것입니다.』

부패한 본성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철저히 절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에게서 자리잡고 있는 문제들을 인정하게 되고, 그 인정함으로 인해 자신의 변화를 하나님께 더 절실하게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로부터 변화될 때 세상의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내 가정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내 공동체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장 소극적인 답이며 동시에 가장 적극적인 답, 가장 무책임한 답이면서 가장 강력한 답.

그것은 “I a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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