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본질은 감사에 있다. 시편 50:22-23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물 때문에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하고 부르신다. 

예배도 있고 말씀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감사가 없는 예배 감사가 없는 성경 공부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예배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성경 공부라는 것이다. 예배의 본질은 감사에 있다. 시편 100:4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언제나 '감사함으로' 이다. 

딤후 3장에 말세의 사람들이 나온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그 다음에 "감사하지 아니하며"라고 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편 50편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한 다음에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지만, 우리가 그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가 사라지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뒤틀리고 찢어질 수밖에 없다. 감사가 사라지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찢길 수밖에 없다. 부부관계에서도 감사하지 않으면 부부관계가 찢어질 수밖에 없다. 이웃과도 마찬가지이다. 감사가 사라지면 결국 그 자리는 원망 불평밖에 없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고 했다.

노르웨이에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 사탄이 큰 창고를 지어놨다. 그 창고에는 온갖 악의 씨앗이 가득 들어 있다. 미움 시기 질투 비난 원망 불신 그런 씨앗이 가득 있다. 사탄이 창고에 들락거리면서 그 씨를 내다가 온 세상에 뿌린다. 그러면 그 씨앗들이 자라서 사람들 사이에 서로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고, 서로 비난하고 원망하고, 그런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한 마을에는 어떤 씨를 갖다 뿌려도 그 씨가 전혀 나지를 않는 것이다. 미움의 씨를 뿌려도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는다. 시기 질투의 씨를 뿌려도 시기하고 질투하지를 않는다. 비난과 원망의 씨를 뿌려도 비난과 원망이 없다. 

그 마을의 이름은 바로 '감사'라고 하는 마을이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의 씨가 뿌려져도 싹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사가 없이 원망과 불평과 시기만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의 영혼도 인격도 삶도 결국 갈가리 다 찢기고 비참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 안에 진정 감사가 없으면 예배를 드려도 본인도 힘들고 하나님도 힘들다. 

하나님께서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하는 예배를 드리게 된다. 감사가 없으면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도 힘들고 남도 힘들다. 감사가 없으면 직장생활도 나도 힘들도 모두가 다 힘들다. 

감사가 진짜 믿음이다. 결국 얼마만큼 감사하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이고, 그 사람의 헌신이다. 

부부 사이에도 얼마나 감사하느냐가 그것이 진정 사랑의 척도이다. 부모님을 향해서도 얼마나 감사하느냐가 진짜 효도요, 자녀를 향해서도 얼마나 감사하느냐가 자녀에 대한 사랑이다. 언제나 감사가 충만하여 참된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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