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엘리야의 시대에 하나님은 한 움큼 남은 가루와 병에 조금 남은 기름으로 3년 6개월의 가뭄의 때를 살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다. 이 기적의 현장에는 엘리야와 사르밧의 한 과부, 두 사람의 순종이 있었다. 

엘리야는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했다. 엘리야는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아합을 피해 숨어야 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숨어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시돈은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친정아버지가 다스리고 있는 나라이다. 

그릿 시내에서 사르밧까지 가는 길에는 도로 곳곳에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해 아합의 군사들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눈을 피해서 가야 한다. 또 그곳에 가더라도 편안하게 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엘리야가 가는 곳은 이세벨의 아버지가 다스리고 있는 땅이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런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두렵고 힘든 길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아멘하고 순종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한 과부를 만났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 과부를 통해서 그 긴 가뭄의 때에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 '과부'라는 말은 '고아'라는 말과 함께 아주 약하고 힘없는 자의 대명사로 쓰였다.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갔을 때 바로 이런 연약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엘리야가 만난 상황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당장 땔감 몇개를 주어다가 마지막 남아있는 한 움큼의 밀가루를 반죽하여 먹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 음식이 다하면 죽으려고 작정을 한 여인, 더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그런 여인에게 가서 몸을 의탁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받은 이 명령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은 현재 우리가 듣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2000년 전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청년이 바로 나를 위해서 죽었다는 말씀을 듣는다. 2000년 전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저 평화를 외치다가 로마의 무참한 말발굽에 밟혀서 죽은 무저항 비폭력주의를 외치던 청년의 죽음이 아니라, 그의 죽음은 바로 나를 위한 죽음이었다는 말씀을 듣는다. 그 청년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고, 그래서 그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인생의 짐이라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말씀을 듣는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 과부를 보고 있는 엘리야나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 가난한 과부에게 몸을 의탁하여 살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 여인을 통해 놀랍게 역사하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 엘리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아갔던 사도바울이나, 또 그 이름 의지하여 살아가는 우리나 모두가 다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엘리야가 보았던 보잘것 없던 그 과부처럼, 우리 앞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도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그 외모나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다. 집안 배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보잘 것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음을 우리는 믿는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했을 때 3년 6개월 동안 그 가뭄 속에서도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신뢰할 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믿음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아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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