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시인
윤일광 시인

숙종 때 거제현령 김대기(金大器)가 고현과 거제읍을 잇는 새 길을 만들었다. '김실령재(김현령재)'다. 그전에는 거제읍에서 고현이나 아주로 가려면 명진과 용산 사이의 계룡산 높은 재를 넘어야 했다.

어느 해 큰 흉년이 들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어머니는 오누이를 시켜 아주 친정집에 쌀을 얻으려 보냈다. 오누이가 고개를 지날 무렵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비에 젖은 여동생의 몸이 오빠의 욕정을 자극했다.

견딜 수 없는 갈등을 느끼던 오빠는 동생을 잠시 먼저 보내고 불순한 마음을 품었던 자신을 원망하며 칼로 자기의 성기를 잘랐다. 오빠가 늦어지자 걱정이 된 동생이 되돌아갔더니 오빠는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오빠가 죽은 이 재를 '고자산치'라고 부른다. 조선 중기 좌의정을 지낸 용재 이행(李荇) 선생이 거제로 귀양왔을 때 현지 사람들은 '고자고개'라고 부르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부르기가 민망해 할머니(姑)가 친정 길에 오르면 효자 아들(子)이 산꼭대기까지 데려다 주는 고개라는 뜻을 담아 '고절령(高節嶺)'이라 부르게 했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다고도 했다.

오빠를 잃은 동생은 문동폭포가 있는 뒷산을 거쳐 아주까지 울면서 갔다고 해서 '울음이재'라고 했다. 한자로 '읍곡령(泣哭嶺)'이라 쓰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이름표가 하나 붙여 있다. '명재쉼터'다. '명재'가 뭔가? 유추컨대 '울음이재'를 말하는 것 같다. '울 명(鳴)자+재'라는 말일 게다. 한자에 우리말을 조합한 '명재'라는 이름을 붙인 이 용감한 발상이 놀랍다.

'고자고개' 전설은 간혹 있지만 '울음이재'와 한 묶음이 된 스토리텔링은 보지 못했다. 이행 선생이 거제에 귀양 온 때가 1505년 무렵이니 울음이재의 전설은 적어도 500년이 훨씬 넘는 거제의 대표적인 전설인데도 하루아침에 '명재'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둔갑시켰다. 이게 거제문화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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