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의 서예가는 서성(書聖)이라 일컫는 진(晉)의 왕희지(307~365)를 친다.

자는 일소(逸少)며 벼슬은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냈지만 본디 벼슬에는 큰 뜻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존경하지 않는 왕술(王述)이 중앙에서 순찰을 나오자 이를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던져버리고 경치가 아름다운 산수간을 누비면서 지인들과 청담(淸談)을 나누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다가 한 평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가 아직 벼슬에 몸담고 있었을 때 일이다. 3월 삼짇날 흐르는 물에 몸을 깨끗이 씻고 신에게 복을 기원하는 계제사(祭祀)에 42명의 문사(文士)들이 난정(蘭亭)에 모여 시를 짓고 술을 즐기는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때 모인 명사들이 쓴 시를 모아 만든 책의 서문을 왕희지가 쓰게 된다. 그 글이 28행 324자의 「난정서(蘭亭序)」로 서예사의 일대 걸작으로 꼽는다.

일설에는 왕희지가 난정서를 술에 취해 썼는데 깨어보니 전아(典雅)하고 힘찬 글씨에 자신도 놀라 수십 번을 다시 써 보아도 그만큼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왕희지의 등장은 중국에 있어 서법(書法)의 효시가 되고 나아가 서예가 단순한 문자 기록이 아닌 하나의 예술로 자리매김하면서 품격 높은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왕희지의 육필(肉筆)은 남아 있지 않다. 당나라 태종(太宗)이 왕희지의 글씨를 사랑한 나머지 천하에 있는 그의 글씨를 모아 모두 왕희지의 관에 넣어 묻어버렸다고 하지만 믿긴 어렵다.

그의 글은 탁본으로 남아 있거나 진필을 베껴 쓴 모작 20여 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매지첩(妹至帖)」이라는 겨우 17자의 모작이 홍콩 크리스티 경매시장에서  중국 서예품 사상 최고가인 500만 달러(약 45억원)에 낙찰될 것이라니 만일 육필이라면 그 값은 상상을 불허한다.

7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왕희지를 비롯한 중국 당대의 최고 글씨들을 모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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