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윤일광 칼럼위원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白石)의 시 '백화(白樺)'의 일부다. 화(樺)는 자작나무다. '백화(白樺)·화수(樺樹)·화목(樺木)·백단(白椴)' 등으로 쓴다. '자작나무'라는 말은 하얀색 껍질에 기름기가 많아 불을 붙이면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우리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소리를 내지 않는데도 어쩜 그렇게 시적인 이름을 붙였을까.

자작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원도 한계령을 기점으로 북쪽에서만 서식하는 한대림으로 여겼는데, 국립 김천치유의숲에 울창한 자작나무숲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까지를 남방한계선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영하 20~30도의 혹한에서도 견딜 수 있는 자작나무의 생존을 위한 설계는 껍질의 비밀에 있다. 추운 겨울날 두꺼운 옷 한 벌 입는 것보다는 얇은 옷 여러벌이 방한에는 효과적이듯, 자작나무는 기름성분으로 채운 종이처럼 얇은 하얀 껍질을 겹겹이 쌓아 추위를 이긴다.

옛날에는 껍질을 종이 대신으로 썼다.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서조도·기마인물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이다. 나무껍질 속에 함유돼 있는 기름기가 천년이 지나도록 습도나 기온의 변화, 벌레의 공격을 모두 막아줬다. 가난했던 북부지방에서는 혼인식 때 초 대신에 자작나무 껍질로 불을 밝혔다. 거기서 '화촉(華燭)을 밝힌다'는 말이 생겼다. 화(華)는 자작나무 화(樺)에서 왔다.

드라마·소설·영화에서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배경으로 눈밭에 서 있는 자작나무 숲이 등장한다. 그 모습이 얼마나 고상하던지 서양에서는 자작나무를 '숲속의 귀족'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번 겨울에는 한번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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