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윤일광 칼럼위원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가 유리다. 유리창이 없는 건축물, 유리문이 없는 자동차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처음에는 깨끗하던 아파트의 유리창이 몇년 못가 뽀얗게 얼룩이 져 보기 흉해진다. 그렇다고 누구나 아무 때나 쉽게 닦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높다보니 참으로 위험하고 성가신 일이다. 물청소를 하려고 해도 아래층으로 물이 떨어진다고 야단이니 마음 놓고 물을 쓸 수도 없다.

중국에서는 이미 진(晋·265~316년)나라 이전에 유리를 발명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리는 보석만큼 귀한 것이어서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훗날 상서령을 지낸 만분(滿奮)이란 자가 진의 무제(武帝)와 독대한 일이 있었다. 만분은 기질이 약해 바람을 조금이라도 쐬면 감기에 걸렸다. 이날 무제 뒤의 창문이 유리로 돼있었는데도 만분은 휑하니 뚫려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 자리에서 감기에 들었다고 중국 고대 소설집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온다.

유리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지만, 이중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에 '3000년 전, 페니키아라는 천연소다 무역상이 식사를 준비하려니까 솥을 받칠 마땅한 돌이 없어 가지고 있던 소다 덩어리 위에 솥을 얹어놓고 불을 지폈다. 가열된 소다 덩어리가 강변의 흰 모래와 혼합되자 투명한 액체가 되었다'고 했다.

역사학자에 의하면 BC 3500년경 청동기시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유리는 1세기 중엽, 낙랑시대에 불투명 유리로 만든 구슬과 귀걸이 등이다. 신라는 유리공예품이 매우 발전해 경주고분에서 유리잔·유리주발·유리그릇 등이 출토됐다.

신라시대에 융성했던 유리제조가 고려·조선시대에는 도자기에 밀려 쇠퇴하고 대신 청자와 백자가 찬란한 꽃을 피웠다. 그런데 올해가 UN이 정한 '세계 유리의 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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