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거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김계수 거제외식업지부 사무국장

2022년 가을이 와서는 바람처럼 물결처럼 흘러간다. 특별한 가을이 아니다. 그저 생애 중 하나의 가을이다, 아주 유별난 가을도 아니다. 그렇게 하나의 계절이 왔을 뿐이다. 그런데 살결에 닿는 바람이 위로처럼 느껴지고, 햇살에 더 오래 서서 거닐고 싶고, 그립다거나 부끄럽다거나 같은 말들을 들꽃 앞에 놓이고 싶다. 굳이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고 싶다. 그냥 들국화라 부르기로 했던 그 꽃들이 제각기 품어내는 가을의 말들을 전해 듣고 싶어진다. 그래서 남자는 가을을 혼자 걸어보고 싶다.

가을은 남자에게 어떤 계절인가? 당신의 가을은 견딜만한가?

가을바람이 만든 물결의 은색 껍질을 벗겨내고 보드라운 물의 속살을 한 바가지 퍼마시고 싶다. 그러면 목구멍에 걸린 삶의 욕심과 질투의 가시들이 여울목처럼 시원하게 흘러내릴 것인가. 풀섶 쑥부쟁이 곱게 피어 쑥스럽게 비빈 자리마다 가을이 바스락거리며 쓰러진다. 여름을 말끔히 지운 작은 골짜기 계곡에는 돌돌 말린 물소리 청아하게 단단해지고 있다. 산 너머에서 마구 퍼 올리는 흰 구름도 해가 지면 구름 스스로 붉게 무너져 산을 넘어 잠들 것이다. 

쑥부쟁이 연보라 물든 꽃잎의 끝이 아주 작게 흔들린다. 꽃잎이 흔들리면 기억들도 흔들려 마구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운 대상들이니 연보라 꽃잎의 흔들림으로 생각나는 그대의 온기를 떨치고 생각나는 그대들의 발걸음을 잊어야 하리라. 가을 속에 남자는 산골짜기 흩어진 바람으로 혼자 가는 것, 쑥부쟁이 곱게 펴진 부끄러움으로 어느새 혼자 사라져야 하리라. 우울하거나 서럽지 않은 가을을 위해 혼자서 걸어가야 하리라. 남자의 발끝에서 쑥부쟁이가 멀어진다. 이제 멀어져 발끝으로만 멀리 쑥부쟁이를 바라본다. 그러나 남자는 외롭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넓은 바다가 그렇듯, 가을 들판은 남자 중에서도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노란 들판에 아버지가 허수아비로 서 계시는 가을의 여섯 시, 구부러진 벼처럼 빼곡히 들어찬 나이를 딛고 이번에는 한 아버지가 구절초를 바라보고 있다.

가끔 논두렁을 시퍼런 조선낫으로 소꼴을 베면서도 구절초 줄기는 남겨 두셨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동안 바람이 왔고, 비가 내리고, 햇살이 스미어 흰 꽃살이 환하게 박혔는데 구절초 남기고 가신 아버지들은 사라지고 없다.

가끔 알 수 없는 구름 같은 상형문자로 오시거나, 철없는 손자들의 풍경화로 나타나기도 하셨다. 아버지라는 남자가 부재한 들꽃을 바라보면서 구절초를 남겨놓은 아버지의 기표와 한 번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은 나의 기의는 수십 년이 흘렀어도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지금도 들에 핀 구절초나 쑥부쟁이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다시 들꽃에게서 발끝으로 멀어져 보면 들에는 어둠이 지붕처럼 구절초를 감싸고 있었는데 한두 번 꽃잎의 하얀 눈시울을 챙겨오는 날이면 가을이 끝날 때까지 침묵은 추운 짐승처럼 우글거렸다. 추운 짐승이 견뎌야 하는 침묵을 이미 견뎌내신 아버지의 가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꽃잎의 하얀 눈시울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걸어간 아버지도 하얀 구절초와 연보라 쑥부쟁이를 남몰래 바라보던 가을이 있었음을, 아버지의 쓸쓸한 발끝을 챙겨보지 못한 후회와 부끄러움이었음을 알아가고 있는 가을에 남자들은 혼자 하얀 들국화에 고백하듯 스러진다.

남자가 들국화 핀 가을 길을 걸을 때 더욱 외롭도록 홀로 내버려 두라. 어떤 가을 앞에서 겸허한 마음의 문이 열리고 내밀한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목소리와 빛깔과 냄새를 가슴속에 쟁이고 있을 것이다. 꽃이 아버지가 되었든, 자신이 쓸쓸한 가을 남자가 되었든 충분히 삶의 순결한 순간이 되도록 내버려 두라.

여리고 순한 꽃의 영혼이 놓여 있는 외로운 길목에 세상을 견뎌온 남자의 육체를 세워놓고 정맥이 보일 만큼 투명한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이다. 특별하거나 유별하지도 않은 남자의 가을을 붙잡아 놓고 그렇게 멋 부리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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