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하느님에게 물었다. "처녀 때는 마음이 곱고 착한데, 마누라가 되면 왜 무서워지나요?" 하느님이 대답했다. "처녀는 내가 만들었지만 마누라는 니가 만들었잖아!"

조선시대 유몽인(柳夢寅)이 쓴 설화집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를 몹시 두려워하는 판관(判官)이 있었다. 아침에 부인에게 심한 잔소리를 듣고 나왔는데 도대체 나만 그런지 궁금해서 사령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너희들 중 마누라가 두려운 사람은 왼쪽에 그렇지 않으면 오른쪽에 서라!"

모든 사람들이 왼쪽에 섰는데 한 사람만 오른쪽에 섰다. 판관은 그를 장하게 여겨 말했다. "그대와 같은 사람이 진짜 대장부로다. 나는 백만 대군과 싸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마누라 앞에만 가면 두렵다네. 자네는 어떻게 수양을 했기에 이에 이르게 됐는가?" 장병이 말했다. "제 처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쩔쩔매는 사람 또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공처가(恐妻家)라 한다. 공처가는 근대용어고 전에는 아내를 모시고 산다고 처시하(妻侍下), 엄한 아내 밑에서 쥐여산다고 엄처시하(嚴妻侍下)라 했다.

남성위주의 조선사회에도 '처시하'는 있었다. 이런 사람을 '판관사령'이라 불렀다. 판관은 조선시대 종5품 외관직으로 큰 고을의 원이다. 입법·행정·사법권을 동시에 쥔 권력자다. 사령(使令)은 관아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령은 판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였다. 이를 두고 아내가 시키는 말에 거역할 줄 모르는 사람을 농으로 일컬어 '판관사령'이라 놀렸고, 줄여서 '판관'이라고도 했다.

'판관사령'이란 말은 재미로 지어낸 말이 아니고, 서거정(徐居正)의 패관문학집인 '골계전'에 나오는 말이다. 아내를 두려워 하기에는 판관이나 사령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흔히 하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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