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수필가
김지영 수필가

빨개진 눈으로 형광등을 쏘아본다. 재채기 참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해서 따라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 조용했던 수업 분위기가 재채기 소리에 한순간 술렁거린다. 급하게 터져 나오는 생리현상에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있겠냐마는 코로나19로 민감한 시기라 혹 오해할까봐 눈치가 보인다.

봄이다. 겨울이 흑백사진의 무채색의 풍경이라면 봄은 칼라 사진을 보는 듯 화려하다. 실바람에 날리는 꽃잎 속에 사람들의 표정 또한 생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꽃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연신 재채기를 한다. 눈과 코가 간지러워 휴지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한다. 쉴 새도 없이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코로나19에 걸린 게 아닌지 나조차도 의심스러워 여러 차례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했다. 다행히 모두 음성이었지만, 이런 시국에 콧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까봐 재채기를 하지 않으려고 무단히 애를 써본다. 재채기와 사랑은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다더니 딱 맞는 말인가 보다. 문득 재채기가 터져 나오는 것처럼 내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 할 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순간순간 그때의 감정을 늘 포개어 놓고는 혼자만 속앓이했다. 상대방에게 전해야 할 고마운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시간을 놓쳐 버려 전하지 못했다. 좋고 싫은 감정들을 어영부영 가슴에 묵혀 놓고 살았다.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첫 직장에서 만난 동료였다. 소심한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성격이 활달하여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기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쉽게 정을 붙일 사람이 없던 나와는 달랐다. 서로가 지방에서 올라 온 처지라 방을 구해야했다. 막 시작한 직장생활에 서울의 비싼 방값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며칠을 고민을 하고 있으니 선배가 룸메이드를 구한다는 친구를 소개시켜주었다.

보증금에 대한 여유는 나에게 있었고, 월세만 반반씩 보태기로 하고 방을 알아보기로 했다. 나에겐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외로운 타지 생활에 친구가 생겨 일석이조였다. 그녀와 같이 방을 쓰게 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떻게 집을 구하게 되었냐는 동료의 물음에 "내가 보증금을 걸고 월세를 반반씩 하기로 했어"그저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와전되어 오해를 불려 일으켰다.

그날 집으로 돌아 온 그녀는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 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냐며 화를 냈다. 동료들의 물음에 별 뜻 없이 더 붙이거나 빼지도 않고 그대로 말 한 것뿐인데 그녀는 마치 내가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닦달했다. 곱지 않은 말들이 오가는 사이 우리는 서로 상처를 받았다. 밤 시간은 어찌나 더디 가는지 이불 뒤척이는 소리만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그 일이 있은 후 동료와의 사이는 소원해졌고,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집안은 침묵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몇 개월 후 그녀가 먼저 다른 직장을 구해 나갔다. 밀물처럼 빠져나간 그녀의 텅 빈 자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휑했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니 그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녀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그 집을 떠났다.

이사를 할 때면 가끔 침묵 속에 길고 길었던 그날 밤이 떠오르곤 했다. 한 공간속에 모든 것들을 같이 공유했던 관계였기에 굳이 미안하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겠거니 생각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표현하지 않는 마음이 더 멀리 가버린다는 것을 몰랐다.

오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덕지덕지 내려앉아 진심을 가리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말 한마디의 무게감에 마음을 보여주기가 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숨길 수 없는 재채기처럼 사랑의 마음과 미움의 마음도 그때그때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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