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난다. 한 여름이라도 삼겹살 지글지글 굽으면 소주가 생각나고, 치킨이 있으면 맥주가 생각난다. 술은 맛보다는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술 문화는 어떤 정서적 분위기일까? 당나라 시인으로 달과 술을 사랑했던 이백(李白)을 빼놓을 수 없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동요에 나오는 사람으로 비록 중국사람이지만 그가 우리나라의 사대부나 시인묵객들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혼자 술을 마신다 /잔 들어 달을 부르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네'라는 '월하독작(月下獨酌 달빛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다)'에서 보듯 달과 술은 영원한 연인이요 이백 시의 원천이자 삶의 에너지였다.

조선후기 대제학을 지낸 이정보(李鼎輔)는 78편의 시조를 남겼는데, 그는 시조를 양반문학에서 평민문학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신 분이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玩月長醉) 하려노' '완월장취'란 달을 벗 삼아 술에 오래도록 취함을 말한다.

그는 평생 이백에 못지않게 달과 술과 시를 사랑하셨던 분으로 얼마나 이백과 비교하고 싶었으면 달에게 묻는다. '옷 벗어 아희 주어 술집에 볼모하고 /하늘을 우러러 달더러 물은 말이 /어즈버 천고 이백이 날과 어떠하더뇨'

조선중기 예조판서를 지낸 신흠(申欽) 또한 청탁불문의 술꾼으로 달 밝은 밤이면 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술이 몇 가지요, 청주와 탁주로다 /먹으면 취할진데 청탁(淸濁)을 관계하랴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이면 아니 깬들 어떠리'

달의 아름다움은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제 홀로 빛나는 고독이다. 그래서 시인은 달을 사랑한다. 오늘 밤 달이 뜨거든 월하독작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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