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시인 백호(白湖) 임제(林悌)는 술을 좋아했다. 어느 날 잔치 집에 갔다가 그날도 술에 흠뻑 취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말을 탔는데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 이를 본 하인이 "나으리, 신발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요" 하고 말을 하자 임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야 이놈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길 왼편에서 보면 나막신을 신었구나 할 테고, 오른편에서 보면 가죽신을 신었구나 하겠지. 괘념치 말고 어서 집에나 가자."

이 이야기는 조선후기 박지원(朴趾源)의 연암집 제7권 낭환집서(  丸集序)에 실려 있다. 낭환은 쇠똥구리가 둥글게 빚은 똥덩어리를 말한다. 본디 이 말은 '쇠똥구리는 자신의 쇠똥구슬을 아끼며 용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자신의 구슬이 귀하다 하여 쇠똥구리의 구슬을 비웃지 않는다'에서 왔다. 유득공의 숙부인 유연(柳璉)의 시집 '낭환집'에 연암이 서문을 쓰면서 백호 선생의 일화를 실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한쪽만 보면서 그것이 진리라고 우긴다. 말의 왼편에 선 사람은 보이지 않은 저쪽도 같은 나막신이라고 믿을 것이고, 말의 오른편에 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저쪽도 가죽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왜 두 개인가?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고 판단하라는 것인데 우리 눈은 늘 관심있는 것만 보는 외눈박이다. 귀는 왜 두 개인가? 이 말도 들어보고 저 말도 들어보고 판단하라는 것인데 우리는 한쪽 말만 듣고 한쪽 귀는 닫아놓고 산다. 신발이 짝짝이인 줄도 모르고 내가 본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공자와 그 제자들이 일주일을 굶었을 때 안회가 쌀을 구해 밥을 지었다. 공자는 밥이 다 됐는가 하고 부엌문을 여는 순간 안회가 밥을 떠먹는 것을 보았다. 밥을 푸는 순간 흙이 떨어져 그걸 뜬 것인데 오해한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눈으로 보았다고 다 옳은 것이 아니다." 공자가 그럴진대 우리 범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