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애 수필가
문성애 수필가

여행은 사람을 연하게 만든다. 여유로움을 배우고 비워내어 가벼워지기도 한다.   내일을 여는 에너지까지도 선물 받는다. 불일암으로 오르는 길이다. 마음은 소나무와 대숲을 지나는 바람과 얘기하고 눈은 호젓한 산길을 따라 호사를 누린다. 명절 뒤라 붐비지 않는 산길의 조용함이 더욱 좋다.

'무소유길'이라는 푯말을 따라 걷는다. 뭉게구름 같은 욕심들이 스르륵 내려 바닥에 주저앉는 듯하다. 무소유길은 법정스님께서 다니시던 길이다. 흙길을 걷다보니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정월 추위만 아니라면 신발을 벗고 걸어가고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지며 지나갔을까. 때가 되면 제 스스로를 놓아버릴 줄 아는 나무의 비움은 지금도 발밑에서 거름이 되어가고 있다. 잘 다져진 흙길이다가도 낙엽이 쌓인 폭신한 오솔길은 한 박자 쉬어가는 여유로움을 준다. 법정스님께서 손을 잡아 이끌어주는 듯하다. 편백나무 숲에서 깊은 호흡으로 원색의 공기를 마신다. 산사의 차가운 공기가 알싸하게 속을 훑어 내린다. 공기조차 아무것도 몸에 두르지 않은 비움의 길이다. 옮기는 걸음마다 가벼워지는 것은 마음 탓이리라.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던 무소유길이 어느새 대나무숲을 벗어나니 암자가 나타났다. 햇살과 바람만 사는 곳 같다. 고요함 속에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불일암 계단을 오른다. 스님 한 분이 암자의 문을 열고 나오시며 우리를 반가이 맞이해주신다. 얼었던 물이 마침 녹았다며 물을 받으신다. 우리도 졸졸 흘러나오는 감로수를 받아 목을 축였다. 차갑고도 시원함이 삶의 체증을 씻어 내리는 것 같다.

조용한 암자 옆 모퉁이에 햇살이 모여앉아 이리오라 손짓하기에 못이기는 척 앉았다. 아무런 말이 필요치 않은 곳처럼 그냥 앉아 있어도 좋다. 묵언이 절로 되어 해바라기를 한다.

바람이 대나무 숲을 거닌다. 간지럼을 태우는지 대나무들의 우수수 웃는 소리만 들려온다. 겨울햇살과 바람의 놀이터에서 아집에 물든 나를 널어 말리고 싶다. 꼼짝 없이 앉아 풍경 속에 빠져든다. 스님이 뒤도 안돌아보고 산을 훌훌 내려가시는 모습이 자연풍광과 어우러져 그대로 멋진 풍경화다. 우리는 엄마가 외출나간 사이의 아이들처럼 자유로이 암자를 누볐다. 불일암의 문을 열어보고 싶었으나 스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일이라 끝내 궁금증 하나는 남겨두었다.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은 편안한 자유를 온 마음에 물들여 갔다.

내 속의 욕심은 심연에 웅크리고 앉아 매순간 눈을 껌벅인다. 살면서 나에게 맞는 변명에 맞추어 얼굴을 바꾸기도 한다. 종잇장보다도 얇으면서 또한 한없는 무게를 가지기도 한다. 부지런히 삶을 가꾸어 왔지만 그 속에는 아집과 욕심의 방도 함께 채워져 온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이를 먹는 만큼 욕심이 줄어들면 얼마나 좋으랴. 그렇게만 된다면 내 삶의 여정이 끝나는 날에 훨훨 가벼이 떠날 수 있으리라.

올해는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마음먹었다. 떠나는 계획부터 설레었다. 나에게 여행은 늘 꿈이었고 연애였다. 이십대에 힘차게 다녔던 무전여행들이 주었던 지혜와 용기들은 삶의 주춧돌 같았다. 그때의 기억은 때때로 가슴에 꽃을 피우고 향기로움으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느새 예순이 되어 다시 여행자가 되어 보려고 한다. 아직은 여행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 그냥 떠나보는 것을 실행에 옮겼다. 새해 첫 여행이 불일암이라 더욱 뜻 깊은 것이리라.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내 것'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란다.

불일암을 내려가자니 아쉽다. 이 또한 욕심이라 생각하니 다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남아있을 나의 시간에 '무소유'를 심어 늘 마음 닦는 일에 게을러지지 말일이다. 문득 뒤돌아보니 법정스님께서 손을 흔들어 웃고 계신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인사를 하고 바람처럼 내려온다. 또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