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순련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거제지회장
원순련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거제지회장

뒤꼍에 서 있던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다. 춥지 않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도 입 꼭 다물고 대답도 않던 꽃눈이 어느새 벙글었는지 그 연한 꽃망울이 눈웃음을 친다. 하얀색에 파르스름한 연두색 그늘이 내려앉은 꽃잎이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몇년 전 하동으로 문학기행을 갔다. 원래 기행이란 낱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기 마련이다. 내가 살던 곳을 떠나 또 다른 고장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 있는 일이다. 하동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그냥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으로 옛 이야기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은 고즈넉한 고장이었다.

함께 했던 문우들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난전에서 처음 만나는 물건을 샀다. 새롭게 만나는 물건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오래된 물건들이 아직도 장마당에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시장을 돌아 나오려다 어린묘목을 팔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아직 잎도 돋지 않은 묘목이기에 무슨 나무인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할머니께 여쭈었더니 매화 묘목이란다. 그렇게 하여 나를 따라온 매화나무가 꼭 5년 만에 첫 꽃잎을 터뜨린 것이다.

내가 하동에서 매화 묘목을 구입한 것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 들었던 퇴계 이황과 두향의 사랑이야기 때문이었다.

퇴계 이황이 말년에 기생 두향을 그리워하며 애닮은 사랑을 노래한 상사별곡 매화 시 한 편.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의 500년을 뛰어넘는 아름답고도 슬픈, 그리고 애잔하고도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가 여고생의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일까?

퇴계는 매화를 끔찍이 사랑했기에 매화를 노래한 시가 일백수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놀랄 만큼 매화를 사랑한데는 그 이유가 있었다.

퇴계가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 두향 때문이다. 그가 단양군수로 부임한 때가 48세였고, 두향은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에게 반했다.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뻣뻣한 퇴계였지만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고 홀로 부임했으니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와 서·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겨우 9개월만에 끝나게 됐다. 퇴계가 경상도 풍기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날 밤, 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잔 들고 슬피 울제/어느 듯 술 다하고/님마져 가는구나/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져 두 사람은 1570년 퇴계가 6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퇴계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속엔 두향이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그때부터 퇴계는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고 한다.

퇴계는 두향을 만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이 보듯 애지중지 했다.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게 했다고 한다.

퇴계를 보낸 후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벗어나 퇴계와 자주 갔었던 남한 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을 퇴계를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퇴계는 그 뒤 부제학·공조판서·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에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가 한 마지막 한 마디는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라고 말했다고 하니 퇴계의 마음속에 두향이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가를 말해 주고 있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퇴계의 시다. 퇴계가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 말년에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냈다고 한다.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본 퇴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단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이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퇴계가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 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갔단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때 두향이가 퇴계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단다. 그리고 지금도 퇴계 종가에서는 매년 두향의 묘를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단다.

아직도 떠나지 않은 겨울바람 속에서 배시시 웃고 있는 매화꽃을 바라보니 고등학교 때 들었던 퇴계선생과 두향의 이야기가 귓가에 쟁쟁하다.

뒤꼍의 매화는 퇴계 선생과 두향의 사랑이야기를 알기나 하듯이 겨울바람 속에다 아름다운 향기를 풀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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