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숭늉가루 특허 출원한 신옥구 할머니

세계 최초로 '숭늉가루'를 특허출원한 거제면 성내참기름집의 신옥구 할머니와 남편 백익기 할아버지.  /사진= 최대윤 기자
세계 최초로 '숭늉가루'를 특허출원한 거제면 성내참기름집의 신옥구 할머니와 남편 백익기 할아버지. /사진= 최대윤 기자

예부터 아랫목은 늘 아버지의 자리였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 숭늉을 마시는 아버지의 규칙적인 의식은 우리나라 밥상문화의 대미를 장식하곤 했다.

우리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밥상을 받고 밥은 다 먹은 후 숭늉 한 사발 시원하게 들이키며 '아이고 밥 한번 잘 먹었다~'라는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밥상의 부엌행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가마솥에 누룽지를 대충 긁고는 물을 부어 끓여 나온 숭늉을 마시는 일은 요즘 '국민 식후땡'으로 불리는 커피가 자리를 대신한 지 오래다.

더구나 밥은 전기밥솥에서 하고 반찬은 가스(전기)불로 만드는 요즘 세상에 '숭늉'을 따로 만들어 밥상에 올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솥없이 물과 냄비만 있으면 간단하게 숭늉을 만드는 방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에 따르면 거제면에 한 참기름 가게에서 판매되는 '숭늉가루'만 있으면 간단히 숭늉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숭늉가루라는 신문물도 궁금했지만 숭늉가루를 만들게 된 배경과 인물이 궁금해 무작정 거제면으로 달려갔다.

"내가 산달도서 시집을 왔는데, 우리 동네는 다 그렇게 끓여 먹었제∼"

성내참기름집의 신옥구 할머니.  /사진= 최대윤 기자
성내참기름집의 신옥구 할머니. /사진= 최대윤 기자

거제면 서정리 697-2번지, 입구 위에 '성내참기름'이라는 상호 글씨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 가게 문에는 지난 2018년 특허청에 정식으로 '슝늉가루' 특허 출원번호 통지서가 떡하니 붙어 있다.

가게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께 '숭늉가루'에 대해 문의했더니 조금만 기다려 보라며 할머니를 불러왔다.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 최초로 '숭늉 조성물 및 이를 이용한 숭늉 제조방법'을 개발하고 특허출원을 받은 신옥구(81) 할머니다.

알고 보니 그를 소개해준 남편은 지난 2010년 제28회 대한민국 서예대전 한글부문 '대상'을 차지한 백익기(83)씨였다. 앞서 범상치 않게 보였던 '성내참기름'의 상호도 분명 명필가인 할아버지가 직접 쓴 것일 터였다.

산달도 큰동네(산전마을)에서 태어나 거제면 시내로 시집을 왔다는 그는 어릴 때부터 곡물을 맷돌에 갈아 숭늉을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시집을 와보니 고향마을에서 숭늉을 끓여 먹는 방법을 이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맛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30~40년 전쯤 며칠을 연구한 끝에 숭늉가루를 만들게 됐단다.

그의 첫 고객은 방앗간을 찾는 손님들이었다. 남편과 50년 가까이 거제면에서 방앗간 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이른 새벽녘부터 방앗간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성내참기름집의 신옥구 할머니와 백익기 할아버지. /사진= 최대윤 기자
성내참기름집의 신옥구 할머니와 백익기 할아버지. /사진= 최대윤 기자

요즘은 교통도 좋아졌고 방앗간 기계의 성능도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방앗간 떡을 하려면 머리에 지고 수 십리 길을 걸어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운이 좋지 못하면 먼저 온 사람에 밀려 대기 줄만 서다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단다.

때문에 방앗간을 찾는 손님중에는 이른 새벽부터 걸어오느라 아침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의 하루는 아침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일로 시작됐다.

손님들은 별다른 반찬 없이도 그가 숭늉가루로 끓여낸 구수한 숭늉 맛에 열광했고, 손님들은 그가 만든 숭늉이 숭늉가루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앞다퉈 이 마법가루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숭늉가루를 개발했을 당시에는 판매를 염두해 두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손님들이 숭늉가루 제작을 부탁하면 재료만 받아서 만들어주기만 했단다.

손님 중에는 나이가 많아져 소화력이 약해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숭늉가루를 만들고 가장 기분 좋았던 기억은 '숭늉가루 덕에 밥 먹고 산다'는 어느 손님의 인사를 들었을 때라고 했다.

이후 점점 손님이 많아지고 아예 가루만 사겠다는 손님까지 생기면서 그의 참기름 가게 진열장에는 어디에도 없는 '숭늉가루'가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세월이 지나 방앗간과 참기름 가게의 운영은 며느리가 이어가고 있지만 숭늉가루를 만드는 일만큼은 할머니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고 했다.

특허출원을 한 만큼 숭늉가루를 만드는 비법은 남아 있지만, 그가 오랫동안 만들어 온 숭늉가루의 맛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가 만든 숭늉가루 몇 봉지를 구매해 먹어봤다. 구수한 숭늉이 목구멍으로 미끄러지는 순간 옛 고향집 아랫목에 앉아 숭늉을 마시던 아버지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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