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옥 수필가
이형옥 수필가

아이가 3학년이 되는 해 재 넘어 작은 시골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주변에선 잘했다는 말보다 "왜?" 라며 묻는다.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는 학교를 두고 시골학교로 전학을 보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얼굴이 늘 어두웠다. 쉬는 시간에 축구를 하고 싶은데 오늘도 구석에서 공 주고받기만 했단다. 학생 수에 비해 좁은 운동장은 고학년들의 차지였고 2학년 아이들의 공간은 언제나 구석뿐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원버스를 타야 되니 같이 놀 친구도 없었다. 2학년은 아직 더 놀아도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라 쌍둥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들은 쌍둥이를 부러워했고 어른들은 걱정을 했다.

학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넓은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 놀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전학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여러 학교를 둘러보던 중 이 시골학교가 맘에 들었다. 책상 대여섯 개가 동그랗게 마주 보고 있는 교실. 상추며 배추 토마토 오이가 가득한 텃밭이 있는 시골학교는 볼수록 정이 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키운 건강한 먹거리는 점심 급식 때 다 함께 나눠 먹는다고 했다. 신나게 뛰어 놀고 나서 먹는 점심이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하니 침이 고인다. 직접 키운 채소로 작은 입이 터져라 쌈을 싸서 먹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니 하루라도 일찍 전학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학년을 마무리 하고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 3학년이 되자 전학을 하게 된 것이다.

막상 등교 첫날이 되자 아이들은 설레고 긴장되는지 질문이 끝이 없었다. 선생님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새로 전학 오는 친구는 또 있는지, 오늘 급식 메뉴는 뭔지. 끝없는 질문과 함께 도착한 학교. 교문에 서 계시던 교장 선생님의 한마디에 모든 걱정은 눈 녹듯 녹아 버렸다. "쌍둥아 반갑다. 우리 학교에 온 걸 환영한다. 어서 오너라"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체육복을 입고 교문에 서서 아이들을 맞아 주시던 선생님. 등교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다 불러 주시며 어서 오라며 반겨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걱정 가득했던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하교시간. 교문에서 기다릴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교문이 아닌 운동장에 있었다. 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데 섞여 피구를 하고 있었다. 전교생이 다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웃음은 끝이 없었다. 쌍둥이도 그 속에서 함께 즐기고 있었다. 교문 밖에서 기다리는 노란 버스도 없고 재촉하는 엄마도 없었다. 누구 하나 놀이 속에 있는 아이를 불러 내지 않았다. 학교를 둘러싼 나무 위에는 오후 햇살이 내려앉아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키 높이를 재려는 듯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자꾸 커지고 있었다.

하루만에 이렇게 친해진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쌍둥이는 새 학교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등교 때와는 다른 흥분이 차안에 가득했다. 서로 얘기를 하려는 아이들 탓에 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상추쌈으로 먹은 점심 이야기·처음 만난 담임선생님 이야기·새로 사귄 친구들 이야기·교무실에 가봤다는 이야기·돌아오는 십여 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들은 한참을 종이접기를 했다. 화장실에 같이 간 친구도 줘야 하고, 계단에서 손잡고 내려온 친구도 줘야 한다고 했다. 친구들 모두 하나씩 줘야 하는데 5개만 접으면 되는 것도 신난다고 했다. 가방에 소중히 넣어둔 색종이들이 빨리 학교 가자고 재촉 하는 것 같았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낼지 궁금하다. 시간이 지나 기억할 아이들의 10살은 즐거움으로 채워져 있었으면 좋겠다.

일찍 학교 가야 한다며 평소 보다 빨리 깨워 달라는 주문을 하고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학교가 신나는 놀이터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직은 누구보다 잘 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즐겁게 어울려 놀았으면 하는 바람을 아이들도 알겠지. 경쟁자가 아닌 같이 뛰어 놀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곳. 작은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잠든 아이들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전학을 시킨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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