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연 수필가
김선연 수필가

봄이 시작 된다는 3월이다. 이때쯤이면 햇빛이 조금은 따사로워 진다. 하지만 아직도 매서운 칼바람의 여운은 남아 있다. 봄볕에 설레는 마음으로 섣불리 두꺼운 외투를 벗고 얇은 옷을 꺼내 입었더니 찬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봄은 오지만 시작되는 봄은 되려 겨울보다도 더 추위를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땅은 이미 봄맞이 준비에 한참이다. 꽃샘바람이 한 번씩 훑고 가도 봄은 봄인 모양이다. 보슬보슬한 땅에 냉이는 지천이고 온갖 나무들은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푸성귀 정도는 직접 가꾸어 먹고, 가끔은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니 은근히 텃밭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워낙 유기농 채소를 고집하여 온 터였기에 남편과 마음을 맞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그만 텃밭을 마련했다. 노년의 삶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로망이기도 하지 않은가. 손수 길러서 먹는 채소, 거기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의미가 담겨있다.

심어야 할 푸성귀의 종류들이 많아지자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아졌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두고 농사라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채소를 가꾸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식물을 생리를 알아야만 큰 실패 없이 보살필 수가 있는 것이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이 말이 진리이듯 내 발 소리를 먼저 알아듣는 것 같았다.

채소를 가꾸며 남편과 대화하는 일이 많아졌다. 둘이 밥상에 앉을 때면 "이번엔 뭘 좀 심어볼까?"라는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식탁위에는 온갖 종류의 푸른 잎들이 풍성하니 내 마음까지도 풍성하게 느껴졌다.

소일거리가 된 채소 가꾸는 일이 이렇게 즐겁다면 전원생활은 얼마나 더 즐거울까?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돈다. 연보라색 등나무를 심어 꽃이 피면, 꽃그늘 아래 예쁜 테이블을 놓아두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상상도 하였다.

농막으로 사용할 작은 컨테이너를 들여 놓았다. 조금이라도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고자 한 겹을 더해 지붕도 이었다. 여러 가지 과실나무와 꽃나무를 심었다. 그 중에서도 작약과 목단, 불두화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꽃이라 더욱 눈길이 갔다. 그렇게나 심고 싶었던 줄장미도 울타리를 빙 돌아가며 심었다. 울타리를 타고 올라갈 장미의 아름다움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 예쁜 장미꽃을 보며 오가는 사람들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등달아 행복했다.

그러나 꿈은 꿈이었을 뿐일까. 낭만이 피어오르던 전원생활의 즐거운 상상은 현실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남새밭에 가면 우선, 꽃에 마음을 뺏기는 것이 아니라 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웬 벌레들은 그렇게도 많은지.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풀들은 감당하기가 벅찬 스트레스였고, 벌레들로 인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여러 가지 정보와 방법들을 써보았지만 그네들을 이길 수 없었다.

'풀과의 전쟁' 그것은 참으로 지긋지긋한 줄다리기였다. 돌아서면 풀밭으로 변해버리는 텃밭에 질리면서 작은 움막이라도 한 채 지어 즐겨보려고 했던 전원생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풀과 싸우면서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푸성귀를 거둘 수 있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밭에서 심어 거두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맨 처음 택배상자에 담는다. 농약이라고는 한번도 치지 않고 기른 것이라는 모양이야 볼품없지만 내가 길렀다는 자부심과 긍지는 택배상자의 무게보다 더 무겁다. 어떨 때는 보내는 채소보다 택배비가 더 많이 들 때가 있어도 즐거웠다.

받는 기쁨보다는 주는 기쁨이 더 커다는 것을 이 나이가 돼서야 체험으로 깨닫게 된다. 이제 전원생활의 꿈은 사라졌지만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과 거기서 난 푸성귀를 나누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록 넝쿨장미가 흐드러진 울타리를 만들어 나만의 영토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나의 텃밭에는 오늘도 풀꽃들이 피어나 계절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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