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김미광 칼럼위원

12월에 들어서면서 벌써 여러 가게나 건물에서 성탄절 장식을 한 것이 보인다. 우리 옆집도 12월 첫날에 마당에 여러 가지 색깔의 줄 전구를 달아놓아 깜깜한 마당에 불빛이 반짝이는 것이 좋아 보여서 나도 따라서 작년에 달았던 전구를 내걸어 보았다. 역시 마당이 따뜻해 보인다.

나의 연말의 시작은 이렇게 성탄절 전구를 내 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나는 추석이나 설도 좋았지만 성탄절 역시 좋아했다.

일단 성탄절 즈음에는 교회를 나갔다. 성탄절 당일 날 바로 교회 가는 것은 어린 나로서도 너무 속 보이는 것 같아서 한 10월 말 즈음부터 교회를 나가 성탄절을 주일학교 학생으로 보내는 것이었는데 성탄절이 되면 평소 먹지 못했던 온갖 과자, 떡, 과일들을 먹을 수 있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새벽에 동네를 돌며 새벽송 부르고 받은 사탕들은 오랫동안 허기진 달콤한 것들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때는 겨울이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고 거위털 점퍼는 세상에 없었으며 손난로나 몸을 따숩게 하는 어떤 기구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이른 새벽 그 칼바람을 뚫고 온 동네를 누비며 뽀얀 입김으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성탄 노래를 불렀다.

어느 때부턴가 그 새벽송 부르는 일도 사라지고 교회에서 치던 종소리도 사라졌으나 성탄절에 교회에서 하던 성탄 장식은 세상으로 나와 이제는 교회 나가고 안 나가고를 떠나서 연말을 대표하는 문화의 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어른이 되어서야 성탄절의 유래와 성탄절 트리가 어떻게 생겨나고 성탄절 새벽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갖다 준다는 산타클로스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성경 복음서에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나와 있지 않다. 단지 누가복음 2장에 예수님의 탄생일에 목자들이 밤에 자기 양떼를 지켰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겨울이 아니라 풀이 자라는 4월이나 5월 즈음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예수께서 살던 시대에 로마제국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로마는 태양의 신 ‘미트라스’를 숭배했다. 또 로마의 큰 축제 가운데 하나가 농신제였는데 로마의 농사의 신 ‘사투르누스’ 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거행된 이 축제는 12월17~24일에 열렸다.

이 두 신의 생일은 모두 율리우스력으로 동지에 해당하는 12월25일에 기념하였는데 이날이 성탄절로 둔갑한 것은 교황 율리우스 1세가 12월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한 기원 350년부터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12월25일을 예수그리스도의 성탄일로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의 농신제의 풍습을 조사해보면 그때 거행하던 모든 의식들이 성탄 행사로 흡수되거나 대체됐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고대 농신제 동안 사람들은 집 안과 밖을 녹색 나무로 치장했으며 선물을 주고받고 성대한 연회를 열고 촛불을 켰다. 오늘날 녹색 트리의 기원이 결국 로마의 농신제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또 아이들에게 선물을 갖다 주는 이미지의 산타클로스의 기원은 사실은 예수와는 관련이 없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산타클로스라는 가상의 인물이 현재 터키 지역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미라의 대주교였던 성 니콜라우스의 선행에 관한 설화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산타가 붉은색 옷을 입는 이유는 1931년 미국의 음료 회사(코카콜라)가 겨울철 제품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이를 막기 위해 홍보 전략으로 붉은 색을 산타클로스에게 입힌 것에서 유래한다.

내가 너무 무심하게 성탄절에 대한 환상을 깨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성탄절 대부분의 요소들이 성탄 그 자체와는 상관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는 것은 사실이고 대부분의 교회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교인들은 그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자체를 감사하며 기뻐할 뿐이다.

죄인들을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을 던지신 그 분의 사랑이 점점 피폐해 가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구원의 빛으로, 진정한 예수님 오심의 의미를 깨닫고 영의 눈을 떠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시간으로 성탄절 행사가 채워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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