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자원봉사센터 어르신한글교실

“너무 좋아요! 손자들에게 편지도 쓸 수 있고, 버스 시간표도 내 눈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요.”

무더운 여름, 뜨거운 열정으로 학업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다. 거제시자원봉사센터 한글교실 할머니들이 오늘의 주인공.

올해로 3년째를 맞는 거제시 자원봉사센터 어르신 한글교실은 거제지역 내 글을 깨우치지 못한 어르신 20여명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평균 연령 70세. 고희를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주 수요일 거제지역 곳곳에서 공책과 연필이 잘 정돈된 가방을 들고 한글교실로 등교하는 할머니들에게 이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뜨거운 열정으로 학업에 몰두하고 있는 거제시 자원봉사센터 ‘어르신 한글교실’ 할머니들이 수업교재를 보며 글자공부를 하고 있다.

한글교실에는 자원봉사센터가 있는 고현시내에 거주하는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장승포나 칠천도 같이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소요해야 하는 지역의 할머니들까지 한글을 깨우치기 위한 학구열을 보이고 있다.

한평생 눈칫밥으로 살았던 할머니들은, 반세기를 훌쩍 뛰어 넘는 세월동안 인생 공부는 부족할 것이 없지만 아직 ‘까막눈’이란 멍에 때문에 마음이 항상 불편했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있어서 읽고 쓸 수 있는 즐거움은 세상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삶의 활력소다.

할머니들은 “일주일에 한 번 듣는 수업시간이 왜 그렇게 짧게 느껴지는지, 선생님만 괜찮다면 매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수업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첫째시간은 지난주에 배웠던 공부를 복습하는 시간과 요즘은 잘 부르지 않지만 할머니들이 젊었던 시절 즐겨 부르던 옛 가요를 부르는 시간이다.

할머니들은 귀에 익은 유행가를 구성지게 부르면서도 노랫말을 받아 적은 공책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예사롭지가 않다.

두 번째 시간은 받아쓰기시간. 시험을 치르는 시간동안 한글교실은 긴장감이 맴돌고, 시험을 치르는 할머니들의 진지한 모습은 대학입시 시험보다 더 엄숙하다.

특히 전래동화 시간과 유행가로 한글을 배우는 시간에는 비록 유창하게 읽지 못하지만 여러 할머니들 앞에서 그동안 성과를 자랑하는 발표시간도 갖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한글교실에서 내준 숙제와 일기쓰기도 잊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공부는 한글교실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로 돌아가서도 계속 이어진다. 버스 행선지, 시내의 간판,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막 등 생활 속 한글문구가 쓰인 모든 것이 할머니들의 공부거리며, 교과서다.

칠천도에 거주하시는 윤유복(75)할머니는 “더운 날 버스시간 맞춰 칠천도서 고현까지 오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가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고 말했다.

또 장승포에서 한글교실을 다니시는 이계순(83) 할머니는 “한글교실에 오면 친구들도 만들고 노래도 배우고 글도 배우고 사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며 “나는 왜정시대에 학교를 다녀서 한글을 올바로 배우지 못 한 것이 맘에 걸렸는데 이제야 한을 푼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부터 거제신문에 한글교실 강사를 구한다는 기사를 읽고 할머니들의 공부를 맡아온 서한숙씨(거제시 자원봉사센터 어르신 한글교실 강사)는 “할머니들이 평소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설움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살아왔다는 고백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한글을 배우기 위해 먼 길 마다않고 꼬박꼬박 참석하시며 열의를 보이는 할머니 덕에 나 자신도 깨닫는 점도 많고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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