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윤 수필가/시인
서정윤 수필가/시인

또 두 녀석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 며칠전부터 시작된 영역다툼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다.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는 시선에는 불이 이글거린다. 내가 다가가도 마당에 선 녀석도 데크에서 내려보는 녀석도 꿈쩍 않는다. 누구하나가 물러서주면 좋으련만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 할 수 없어 어린 녀석을 강제로 안고 한쪽으로 옮기며 마당을 향해 "순심아, 어서 밥 먹고 가."

순심이는 아랫집에서 사료를 얻어먹는 길고양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 아름다운 여자였지 싶을 만큼 예쁘다. 순하고 착하기까지 해서 어딜 가나 사랑받을 법하다. 그런 녀석이 우리집을 기웃거릴 때만 해도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간식이나 사료를 사다가 조금씩 주곤 했다. 올봄엔 아랫집마당에 새끼를 다섯마리나 낳았다. 벌써 다섯달쯤 됐다. 집주인은 녀석이 새끼들과 잘 살 수 있도록 아늑한 보금자리도 만들어줬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집에서 먹고 자는 일이 더 많았다.

두어달 전 아침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산속 바위틈에서 애기 고양이가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어떤 상황과 맞닥트렸는지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잠시 머릿속이 복잡하긴 했지만 두 눈을 찔끔 감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불쌍하다고 이제 아무나 집에 들이지 말라는 남편의 당부도 한몫을 했지만 이미 동물에게는 정을 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더 강했기에.

꾸물거리던 날씨가 비를 뿌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우가 쏟아진다. 마음이 자꾸 바위틈의 녀석에게로 향한다. 그렇다고 쉽게 데려올 수도 없다. 남편의 당부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지난날 가족들의 전부 같던 반려견을 떠나보냈던 아픔을 또 겪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지 숙지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게서 벗어나 이제는 좀 편안히 살고 싶다.

마음만큼 무거운 비가 무심하게 뿌린다. 흠뻑 젖어서 떨고 있는 어린녀석을 겉옷 속에 감쌌다. 품을 기어드는 솜털처럼 가벼운 어린생명이 따뜻한 나의 체온을 찾아서 옷 안으로 파고든다. 자식을 낳아 키워본 어미만이 아는 안쓰러움에 울컥하지만 녀석의 사연을 깊이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그래, 내 집 마당 한켠만 내어주자. 딱 거기까지만 하자."

그렇게 들인 녀석이 이제 제법 컸다고 영역을 고집한다. 아니 제 집이라고 아주 순심이를 발도 못붙이게 한다. 그러고 보니 녀석 때문에 순심이가 많이 야위어 있는 것 같다. 새끼에게 젖을 물린 탓도 있겠지만 언제부턴가 먹는 것도 데면데면 하는 듯 했다. 그래도 늘 밥그릇은 비어져 있었는데. 오늘따라 등의 뼈도 앙상하게 보인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건 내 불찰도 있다. 거리를 두고 관망만 해야지 하는 마음이 어느새 녀석을 자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사랑의 잣대가 저에게 더 기울어져 있다는 걸 영악하게 파악한 어린 녀석의 행동이 얄밉다.

내 집 마당에서 녀석들이 다툴 때는 참 난감하다. 처음엔 어리다고 내가 보살핀다고 순심이에게 양보하고 물러서라고 선을 그었다. 언제부턴가 어린것의 간식과 사료를 탐내는 순심이에게 넘보지 말라고 네 것이 아니라고 매정하게 거절했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내 마음속에는 내가 키우는 생명이 더 자리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저녁을 먹고 난 후, 녀석들의 사료를 챙기러 갔다. 이쪽저쪽으로 나뉜 그릇에 각자의 사료를 부어줬다. 한참 후 휀스로 친 담을 넘어 순심이가 왔다가 갔다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뭔 일인가 하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입속으로 사료를 물어다가 주차장에 기다리는 새끼들에게 가져다주고 있었다. 뭔지 모를 안쓰러움에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 순심이가 어미였지."

매일 접하는 뉴스나 신문에서 자식을 버리는 이야길 듣는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도 사는 게 힘들다고 세상에 갓 태어난 영아를 버린 부모의 이야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어둠이 내리는 마당에 서서 나의 마음이 전해지도록 어린 녀석을 꼭 안고서 시려오는 눈시울을 주차장으로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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