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의 버린 돌
건축자의 버린 돌
  • 김수영 칼럼위원
  • 승인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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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거제다대교회 목사
김수영 거제다대교회 목사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편에 친구 혜자와의 재미있는 대화가 나옵니다. 혜자가 말하기를 "나 있는 곳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개똥나무라 부르오. 그 큰 줄기에는 혹이 많이 붙어 있어서 먹줄을 칠 수도 없고, 그 작은 가지들은 뒤틀려 있어서 자를 댈 수도 없소.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소. 지금 당신의 말도 거창하고 그럴듯하게 하는 말 같지만, 이 나무와 같이 쓸모가 없는 말이니 사람들이 상대도 안 할 것이오."

그러자 장자 왈 "지금 당신은 큰 나무를 가지고 그것이 쓸데가 없다고 근심하고 있소.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광막한 들에 있는 나무 밑에서 쉬기도 하고, 그 아래서 낮잠을 자지 않소? 그 나무는 곧은 목재로는 쓸모가 없어서, 도끼에 일찍 찍히지 않아 지금껏 살아 있는 것이니, 쓸모가 없다고 하여 어찌 괴로운 일이기만 하겠소?"라고 응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을 보면서 쓸모(所用)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따지면서 걸핏하면 "소용없어, 쓸만해, 쓸모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합니다. 이런 표현의 바탕에는 상대를 대상화하고, 수단이나 이해관계로 따져서 하는 말로, 사람과 사람·나와 너의 인간관계를 존재론적으로 보지 않고, 나와 그것의 소유 관점에서 보고 하는 말이지요.

인간의 밑바닥에는 욕망이라는 본능이 깊이 자리하고 있지요. 본능적 욕망의 그늘에 갇혀 사는 우리들은 모든 것을 나의 필요에 따른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소유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게 판단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자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 하여 '쓸모없음'이야말로 가장 '쓸모있음'이라고 하면서,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존재하는 천하 만물들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고추는 고추대로, 상추는 상추대로, 큰 돌은 큰 대로 작은 돌과 모래는 작은 대로 꼭 필요한 것이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입니다. 절대가치의 존재란 말이지요. 시체가 썩는 곳엔 반드시 구더기가 생깁니다. 우리가 볼 때는 구더기가 징그럽고, 더러워 “아이구 저런 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구더기가 없으면 시체가 썩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시체가 썩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온 천지가 시체로 가득할 것이고 이 세상은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구더기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으로 쓸모있다 없다 재단할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시118:22) 성경말씀에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건축하는 전문가(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쓸모가 없어서 버린 돌이지만, 만물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은 가장 쓸모있는 모퉁이 머릿돌로 보시고 세우셨다는 말이지요. 전문가(사람)의 눈은 쓸모 기준으로 보고 나의 필요에 도움이 되나 안되나를 보고 판단합니다. 전문가(사람)의 눈은 쓸모 기준으로 보고 나의 필요에 도움이 되나 안되나를 보고 판단합니다. 내게 도움이 되고 소용이 있으면 선택합니다. 하지만 내게 소용이 없으면 버립니다. 껌을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뱉어 버리듯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엄청난 세계와 '큰 뜻'을 깨닫지 못하고, 혜자와 같이 쓸모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어리석음 속에 삽니다. 그건 내가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주인행세를 하는 교만함 때문입니다.

이제 눈을 바꾸십시오. 내 관점(쓸모)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관점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쓸 데가 없다는 무용(無用)이야말로 가장 크게 쓰일 수 있는 존귀한 존재로 보이게 될 것이며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쓸모를 위한 욕망과 쓸모없음의 사이에서의 갈등과 혼란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허락한 지정학적인 운명(인연)입니다. 그러기에 일본이 아무리 얄밉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이사 갈 수도 없으며, 주어진 지리적 환경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웃나라를 보는 눈을 바꿔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웃하면서 살게 하셨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면 한일간의 갈등이 해소될 것이며 상생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모든 인간관계를 쓸모가 아닌 존재 그 자체를 보면서 더불어 사십시오. 그러면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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