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석 거제시약사회장
고윤석 거제시약사회장

500년전 대항해시대의 바스쿠 다 가마와 마젤란은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더 많은 신천지를 발견했을 지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의 고국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향신료 무역에서 막대한 부를 얻어 세계를 제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만약 그랬다면 영국은 '대영제국' 이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18세기 후반, 괴혈병이 만든 비극을 영원히 끝낸 영웅이 등장했다. 영국 해군 소속 군의관 제임스 린드는 집념과 끈기로 오렌지·사과·레몬 등을 사용해 실험에 실험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괴혈병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린드의 괴혈병 치료제란 다름 아닌 다량의 비타민C가 함유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이었다. 이후 제임스 쿡 선장은 린드가 개발한 '비타민C를 포함한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지혜롭게 활용해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사우어크라우트(양배추 등의 채소를 절여 만드는 발효식품의 일종으로, 비타민 C를 풍부하게 함유)라는 음식으로 선원들에게 제공해서 18세기 후반에 쿡 선장은 세계일주에 성공하게 됐다.

그 시대의 뱃사람들은 거센 풍랑이나 해적의 습격보다 괴혈병을 더 두려워했는데, 쿡 선장은 '비타민C예방법'으로 단 한 명의 선원도 잃지 않고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었다.

영국이 19세기 거의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데에는 '괴혈병 정복'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이 시기에 영국 해군은 배에 라임 주스를 싣고 다니며 정기적으로 마시게 했다.

비타민 C는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에게는 '기독교 성배'처럼 여겨졌다. 헝가리 출신의 생화학자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는 소의 부신피질에서 환원성 물질(항산화제)을 추출하는데 성공하여 이름을 '헥슬론산'이라 명명하고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한다.

그 후에 월터 노먼 하우스가 비타민 C 구조를 명확히 밝혀내고 '아스코르빈산'이라고 명명했으며 노벨화학상을 수상한다.

그 이후에 비타민C의 속성이 밝혀지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일반인에게 좀 더 보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비타민C가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한 물질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타민 C는 산화되기 쉬운 성질이 있어 체내의 활성산소 등과 만나 유해물질을 제거하고, 식품 등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산화되는 현상을 막아주는 작용도 한다. 건강식품·영양제·첨가물 등으로 애용된다.

평생 노벨상을 두번이나 받은 화학자 라이너스폴링은 65세부터 비타민C를 광신적으로 신봉하면서 하루 6g에서 18g의 비타민C 섭취를 권장했다(하루 권장량 1g) 비타민C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아내와 폴링 모두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폴링이 주장한 '비타민C 만능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비타민C의 새로운 생리작용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후 500년이 넘게 지난 오늘 날까지도 비타민C의 진정한 효과를 평가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 비타민C야말로 의약학이라는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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