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일 편집국장

▲ 배창일 편집국장

매년 말이면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당해 한국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촌철살인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꼬집는 말이다. 2015년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대학교수들은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았다.

'나라 상황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무도'를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역사가들은 '혼용무도'의 표본으로 중국 진나라 2세 황제 호해를 들곤 한다"면서 "호해는 환관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의해 자결하고 진은 멸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5년 한국의 상황을 가리켜 "연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줬다"며 "중반에는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면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고 비판했다. '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 '당동벌이(黨同伐異)' '상화하택(上火下澤)' '밀운불우(密雲不雨)'. 앞의 말들은 지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다. 이를 보면 2006년까지는 주로 내부 분열에 따른 혼돈의 시대를 의미하는 사자성어들이 많이 채택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07년부터 이전과는 사뭇 다른 사자성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7년에는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인다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 선정되더니, 20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2009년 '방기곡경(旁岐曲逕·샛길과 굽은 길로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님)'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냄)'가 선정되면서 불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1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엄이도종(掩耳盜鐘)' 2012년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거세개탁(擧世皆濁)'이 선정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부터는 더욱 강한 메시지가 담긴 올해의 사자성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3년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면서 순리에 역행한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 2014년 거짓을 강요해도 이를 부정하지 못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채택되기에 이른다.

올해의 사자성어로만 본다면 갈수록 세상은 거짓과 혼돈에 빠져있어 나라는 어지럽고 혼탁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물론 다변화된 사회일수록 사회발전과 변화과정에서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을 지적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아프게 받아들이는 용기와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올해 거제지역은 조선경기의 악화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지속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사는 지자체 중 하나라는 수식어는 뒷전으로 밀렸다. 양대 조선소의 대규모 적자는 곧바로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이 돼 돌아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머릿속 이해를 넘어 상대방의 상황을 알고, 그 사람의 기분을 같이 느끼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한다. 공감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견고히 한다. 그렇기에 현대사회에서 소통의 바탕을 공감으로 꼽기도 한다. 공감은 곧 나눔으로 이어진다. 소외받는 이웃을 위한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은 세밑 한파에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가장 쉽고도 뜨거운 방법 중 하나다.

2015년이 저물어간다. 사람들은 새 해를 보면 다시 소원을 빌 것이다. 매일같이 뜨는 해지만 사람들은 '새 해'라며 의미를 부여한다. 희망을 가진다. 백발 노부부들도, 고사리 손의 어린 아이들도 두 손을 모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망이 절망의 나락으로 빠질지라도, 바닥을 딛고 올라서듯 다시 일어설 채비를 한다. 공감과 나눔으로 새해 맞을 준비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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