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거제중앙고 교사
20년 전, 친하게 지낸 한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워낙에 개를 좋아해서 집에서 말만한 개를 세 마리나 키웠는데 50평이 넘는 아파트에 자녀도 없이 두 부부가 개 세 마리와 사는 집은 거의 개판 수준이었다.

그 집에 갈 때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도 전에 개 세 마리가 돌림노래처럼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고 집안은 아무리 매일 반짝반짝 청소를 해도 개 오줌 냄새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개털, 그리고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요상한 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언니는 손님이 오면 미안해하면서도 연신 주인에게 달라붙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님들의 위생이나 불편함은 아랑곳없이 대화에 집중하는 듯 마는 듯 온통 신경이 개한테 가 있는 것 같아서 영 대화하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손님 올 때는 개 좀 묶어 놓지 해도 도저히 안타까워서 묶어놓을 수가 없단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 사는 주민들이 개 짖는 소리 및 베란다에 개가 오줌을 싸서 냄새가 올라온다고 항의를 해도 언니는 꿋꿋이 버텨냈다. 참 나,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언니임이 분명한데 어찌 저렇게 동물한테 정신이 팔려 인간관계를 망치나 싶었다.

개털과 개 냄새 때문에 되도록 그 집에서 만나는 것을 그렇게 피해왔건만 어느날 부득이 언니집에 갈 일이 생겼다. 그런데 오랜만에 그집에 가니 부엌에 못 보던 5층 서랍장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아니, 웬 서랍장을 부엌에다 두었소?"
"아, 그거 우리 애들 간식 넣어두려고 하나 장만했어."

여기서 애들이란 개를 말하는 것이다. 서랍장을 한 번 열어보니 기가 막혔다. 거기에는 소위 친환경 제품, ××유기농마을에서 나온 비스킷부터 닭가슴살, 말린 코다리, 개들이 간식으로 물고 다니는 것은 사람도 비싸서 못 먹는다는 죽방멸치였고 냄비에는 개가 사료와 함께 드신다는 사골이 끓고 있었다. 옴마. 개 팔자 상팔자라고 개가 나보다 더 잘 먹고 더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이 분명했다.

이쯤 되면 마트에서 오백원짜리 오이 하나도 쉽게 못사고 벌벌 떨면서 들었다 놨다 하며 알뜰하게 살던 내가 당연히 화를 내는 것이 순서였다. 그 당시 나는 수도권에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느라 점심값이라도 아끼기 위해 도시락까지 싸들고 다니며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매고 살았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알면서 사람도 아니고 개한테 그런 호사를 제공하는 언니한테 무척 서운해서 이런 인간과는 놀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작년 어느날 나도 강아지가 한 마리 생겼다. 생각지도 못하게 굴러 들어온 녀석이라 키울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일주일을 고민하는 사이에 개한테 정이 들어 고만 키우게 됐다.

처음에는 밥만 주었다. 그리다가 생떽쥐베리의 책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대사처럼 처음에는 돌아앉아 곁눈으로 보다가 점점 다가앉게 되고 서로 길들여지게 되듯이 그렇게 개한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한테 항의가 쏟아진다. 사람한테 그렇게 신경을 좀 써보지? 너는 개가 우선이냐? 이 집의 1순위는 개냐? 개가 갑이다. 등등.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개를 키웠던 그 언니를 기억했다. 나는 완전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경험한다. 개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그 언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런데 개한테 지극정성이라 얼마나 언니를 비난했던가.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당시에는 상대방이 일하는 방식이나 주장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비난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일이 있을 수 있으나 내가 그렇게 비난했던 일을 내가 하게 되는 일이 분명히 있다.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일 조차도 내가 그 입장이 되면 해야만 하고, 그 일이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내가 그렇게 반대하던 일이라도 스스로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니 그럴 때를 위해서라도 극단적인 반응이나 돌이킬 수 없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오늘 개 이야기를 했다. 비단 이런 역지사지의 경험이 개를 키우는 것에만 적용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관계나, 정치나, 직장 생활 등 우리 인간의 삶 도처에 역지사지를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널려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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