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작년 연말, 인근 도시에서 지자체장을 지낸 한 인사의 개인전에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작가적 역량에 내심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선거를 앞둔 일반적인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며 갤러리를 찾았던  다른 관람객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지 출마보다는 전업 작가로 나서는 것이 어떻겠냐는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었다.

살다 보니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이 단순한 레토릭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요즘처럼 자고 일어나면 각종 사고로 덧없이 생을 마감하는 많은 이웃들을 보게 되니 예술의 영원성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승화시켜 보려고 했던 동서고금의 노력들에 더 주목하게 된다.   

올해로 그룹 아바(ABBA)가 결성 40주년을 맞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노래 '워털루(Waterloo)'가 1974년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한지 40주년이 된 것이다.

이 때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또 하나의 전설, 영국 출신의 올리비아 뉴튼 존도 참가했다고 하니 아바는 출발부터 월드스타로서의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발매하는 앨범마다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해 내며 전 세계인의 감성을 장악했던 전성기 10여년간의 아바는 그 땐 영원할 것 같았다. 아바(ABBA)의 영문 이름은 멤버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것인데, 부부 두 쌍으로 이루어진 구성을 너무도 훌륭히 상징화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좌우대칭의 디자인미는 어쩐지 완전체나 영원체 같은 이미지로 주술적 느낌마저 가지게 했다.

아바는 한 마디로 참 잘 나갔다. 그 서슬 퍼런 시절, 구 소련의 암시장에서도 아바의 앨범은 최고 인기 상품이었고 모국 스웨덴의 자존심인 자동차 메이커 '볼보'의 매출을 뛰어 넘는 활동으로 일찍이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장밋빛 미래로 그려 내었다.

거칠 것 없던 아바의 질주를 멈추게 한 것은 멤버의 붕괴였다. 이혼이라는 부부의 늪에 빠지며 더 이상 프리다와 아그네사의 낭랑한 음성을 무대에서 들을 수 없었고 팬들의 안타까움은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재결합했다는 오보가 간혹 터져 나오던 중 비요른이 참여해서 만든 뮤지컬 '맘마미아'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아바는 다른 형태로 부활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흑백사진 같은 아바의 원형은 이제 정말 다시 보기 어려워진 것 같다.

이런 안타까움의 표현일까. 아바를 사랑하던 팬들의 마음이 헌정밴드 '아바걸스'를 빚어 내었다. 그냥 짝퉁이라고 치부하기엔 마음 짠한 모습과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마치 복제 아바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라도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가 뭉클하게 느껴진다. 점층적으로 에스컬레이션하는 'I have dream'의 전주가 귀에 쟁쟁이듯이.

비슷한 시기 천상의 화음으로 세계를 매료시켰던 사이먼과 가펑클의 경우도 팬들의 기대가 비슷했다. 이들은 이런 요구에 이벤트로나마 재결합한 듯 성의를 보이기도 했는데, 얼마 전 폴 사이먼이 아내를 폭행해 연행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가 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험한 세상의 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에게서 받은 추억의 오르골을 그저 한번씩 돌려 보고 싶을 뿐인데.  

세계인이 누군가를 두고 비슷한 감흥을 동시에 공유하고 그것을 추억으로 삼으며 수십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이 있기 전의 사회에선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바의 40주년처럼 때때로 이런 인생의 반추를 통해 자신과 주변을 확인해 보고자 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기쁨과 희열만큼 아픔과 허전함이 함께 할 것이다. 

아바의 40주년! 그들에게 축하를 전한다. 또 고마움도 함께. 나폴레옹도 없고 아바도 없고 나도 없는 언젠가, 우리 아들이 듣고 있을 '워털루'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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