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作

▲ 임광훈/회사원
난 평소 '책을 읽어야 생각이 열린다'라는 말을 수십, 수백번 들어왔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 삼아 독서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줄거리에 앞서 싱아를 설명하자면, 신 맛이 나는 풀의 한 종류라고 한다. 왜 책 제목에 싱아를 언급했을까? 

이 책은 여타의 소설들처럼 특별히 줄거리라고 옮겨놓을 만한 중심 사건이 없다. 굳이 줄거리를 얘기하자면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에서의 기억과 서울로 올라와서의 기억, 그리고 성장하면서 느꼈던 귀향할 때의 기억과 그 당시 시대 상황에 엮여 겪었던 일들을 소설로 엮어놓았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작가가 순전히 자신의 기억력을 바탕으로 그 당시 소소한 일들까지 마치 현재의 일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점에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작가가 말한 책속의 '싱아'란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여기서 내가 느낀 싱아는 '그리움·꿈·희망' 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뛰어 놀던 고향을 자신의 의지가 아닌 어머니에 의해 빼앗겨 서울로 이사를 오고 그 서울 생활은 고향에서처럼 천방지축으로 즐겁지가 않다. 서울에서도 자연에서 먹거리를 구할 수 있다는 반가움에 아카시아 꽃을 따먹었지만 그 맛은 고향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고향에 왔을 때는 이미 싱아는 모두 쇠한 후였다. 즉 '싱아'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빼앗기고 짓밟힌 작가의 '희망·꿈·그리움'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남들에게 다 빼앗긴 '싱아'를 얘기하고 있을까? 아마도 지금은 그 '싱아'를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이 원하던 작가가 됐다. 현실에서 '싱아'를 찾은 셈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굳이 '소설로 그린 자화상, 유년의 기억'이라고 밝힌 것은 나도 이렇게 '싱아'를 찾아 먹었으니 당신들도 한 번 먹어보라고 그 '풀'이 얼마나 맛있는지 한번 느껴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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