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규 칼럼위원

▲최덕규 거제불교거사림 지도법사
사람이 살아가는데, 인생을 살아가는데 참다운 이치를 모르는 데서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소중한 부처님이, 자신이 부처님인 줄도 모르고  죄업 많은 중생인 줄 그렇게 잘못 알고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독거노인들, 무의탁 아동들, 굶고 있는 사람들, 그것보다도 정말 북한 문제라든지 저기 중동의 문제라든지 모두 이해관계로, 또는 민족이나 종교의 차별로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엄청난 고통으로 몰아넣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변하는줄 모르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 주는 그런 일을 우리는 해야 되는데 참으로 힘은 부족하고 뜻만 클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그 사람들을 도와야지, 하는 그런 마음에서 밤잠을 설쳐야 되고, 그런 이들이 눈에 밟혀서 잠이 오지 않아야 진짜 세상을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공이 어떻고, 뭐 무아가 어떻고, 연기가 어떻고 그거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진정  이 지구상에서 아, 참 비참한 사람들, 정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생각을 해서 그 사람들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야 되고, 밤잠을 설쳐야 되고, 그들이 눈에 항상 밟혀야 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내 미약한 힘으로 도울 방법은 무엇일까? 이것을 늘 생각하고 그들이 눈에 띄어서 내 손이 미치는 데까지 도와주고자 하는 그러한 마음, 이것이 한량없는 마음입니다. 

저물어 가는 세상에 모두를 존중하고 현실에 직시하면서 누구에 대한 원망도 잊고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풍요로워졌고 발달했다고 하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독선이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게 제일 우선이고,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면 그런 문제가 아주 많이 감소됩니다. 그래도 절대빈곤이라든지 이런 것은 어리석음 하고 또 관계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물질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그들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이제 마음입니다. 새로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인등을 켜고 시간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등은 부처님 전에 등불을 켜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불은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혀주는 것이므로 우리 마음의 미망을 밝혀서 진리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유래를 살펴보면 이러한 의식은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도 행해졌던 공양의식입니다. 법회를 주관하고 사원으로 돌아가시는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해 법을 청하였던 법주가 길가에 좋은 기름을 마련하여 등불을 켜서 가시는 길을 밝힌데서 비롯됩니다.

밝힌다는 의미와 더불어 숭고한 자기 희생의 봉사정신도 함유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빛을 밝힐 수 있도록 저물어 가는 길목에 인등의 의미를 생각하고 새로운 세상을 존중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외면에 불빛을 속이고 힘들고 어려운 것을 포장해서 행동하는 일은 세상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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