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後漢)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 때 시문학이 크게 융성한다. 당시 연호가 건안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 문학을 건안문학(建安文學)이라 부른다.

건안문학의 중심에는 삼조(三曹)로 불리는 조조(曹操)와 그의 아들 조비(曹丕)와 조식(曹植)이 있다. 조조는 생전에 조식을 특별히 총애하여 태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조조가 죽자 조비가 위왕(魏王)의 자리를 꿰찬다.

이런 연유로 조비는 동생 조식을 미워했다. 하루는 조비가 조식을 불러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형제를 주제로 한 시를 짓되 형(兄)자나 제(弟)자는 넣지 마라. 그렇지 못하면 여덟 걸음 째에 네 목이 방바닥에 떨어지리라."고 죽음을 담보로 한 명을 내렸다.

조식은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처연한 음성으로 시를 읊었다. 그리고 정확히 일곱 걸음 만에 끝을 맺은 시가 저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다.

『콩을 볶으려 콩깍지로 불을 피우면 / 콩은 가마솥에서 뜨거워 운다. / 본래 한 뿌리에서 나온 몸이건만 / 왜 이다지도 급하게 볶아대는고』

일곱 걸음 만에 시를 짓는 것이 칠보시라면 초에 한 치(寸)의 금을 그어놓고 그 선이 타는 동안 시를 짓는다는 고사성어가 '각촉위시(刻燭爲詩)'다. 남사왕승유전(南史王僧孺轉山故事)에 나오는 말이다.

필자가 '제32회 한국동시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국정(菊井) 김현봉(金顯奉)선생께서 내려주신 축하휘호가 '각촉위시'였다. 작년에 망백(望百 : 91세의 이칭)을 지나셨지만 그 정정하신 필력은 볼수록 경이롭다.

KBS 진품명품 프로그램 서예 감정가였던 김선원씨가 국정선생을 일컬어 새로운 서체 국정체(菊井體)는 미증유의 업적이며 후대에는 다시 나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한국뿐 아니라 동양 서예의 대가이신 선생님께서 아직 일천(日淺)한 문인을 사랑하셔서 글을 주셨으니 오로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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